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가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기아챔피언스파크 자리에는 무등종합경기장이 있었다. 낡은 무등종합경기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야구장인 기아챔피언스파크를 지었다. 종합경기장에서 광주시민들은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축구도 했을 것이다. 관중들은 선수들을 위해 응원도 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러 광주시장도 국회의원도 왔을 것이다. 아마 대통령도 왔을지 모른다. 광주 무등종합경기장을 다녀간 무수한 이들 중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있다.
1984년 한국에 온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광주를 방문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4년 뒤였다. 서울 도착 다음 날 광주로 갔다. 교황은 바로 무등종합경기장으로 가지 않았다. 먼저 금남로와 전남도청 분수대를 거쳐 종합경기장으로 갔다. 종합경기장에서 교황은 미사를 봉헌했다. 이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광주시민들은 보았다. 그리고 위로를 받았다. 지금은 무등종합경기장이 사라졌지만, 광주의 아픔과 함께했던 교황의 위로를 기억하자며, 교회는 야구장 곁에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교황은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1980년 5월 비극적인 사태로 아픔을 겪고 있는 광주시민과 전남도민들의 마음에 화해와 용서의 은혜가 내리길 기원하는 미사를 집전하였다. 교황은 강론을 통하여 “용서란 우리의 가난한 마음보다 더 위대한 행위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느님만의 것입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에 새겨진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어려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연민의 마음을 표현하며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을 위로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이후 한국을 찾은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광주의 아픔을 위로했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2014년 4월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던 팽목항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유가족들은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광화문광장으로 갔다. 교회는 광장에 있던 유가족들과 함께했다. 광장에서 사제와 수도자·신자들이 모여 미사와 기도를 했다.
그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방문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4개월 만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다. 바티칸 대사관에서 유가족에게 세례를 주었다.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던 대전에서도 교황은 유가족을 품어주었다. 교황은 미사 때 입는 제의에 노란 리본 뱃지를 달았다. 이런 교황의 모습을 세월호 유가족들과 국민들이 보았다.
교황은 광화문광장에서 순교자 124위 시복식 미사를 봉헌했다. 광화문광장에 도착한 교황은 바로 제단으로 가지 않았다. 광장에서 단식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었다. 한국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던 교황은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한국천주교회는 전라남도 목포로 갔다. 침몰했던 세월호를 인양 후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거기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미사를 봉헌하였다. 주교들을 포함해 사제와 수도자·신자들이 모여 위령 기도를 바쳤다. 1984년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랬던 것처럼, 2014년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약자들과 연대하고 위로하는 것은 교회의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는 계속 이럴 것이다. 2027년에는 세계청년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교황이 올 것이다. 그때도 교황은 아픈 이를 위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