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볼 때는 ‘이게 뭔 얘기지?’ 했는데, 극장 문을 나선 뒤에 자꾸만 이런저런 장면들이 되살아나 일상을 다른 느낌으로 살게 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애프터썬’이 딱 그렇습니다.
30대의 젊은 아버지 ‘캘럼’과 11살 딸 ‘소피’가 함께 ‘튀르키예’에 다녀온 짧은 여행... 20년 전의 그 영상을 서른 살이 된 딸이 다시 돌려보는 기억의 여정이 작품의 줄거리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불친절합니다. 서사의 흐름도, 메시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행복했던 며칠간의 옛 기록과 그 안에 깃든 설명하기 어려운 아픔들을 아련하게 교차시키며 딸에게 남겨진 짙은 그리움을 추측하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호한 느낌들이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관객의 마음 한곳에 각자가 잊고 있었던 ‘소중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지요. 국내외 평단의 격찬을 받은 이유도 이 영화만이 가진 독특한 ‘되새김의 미학’ 때문입니다.
“미안해 소피, 그러면 안 됐었어.”(캘럼) 이혼한 뒤 딸이 마냥 보고 싶었던 아빠는 우울합니다. 세상살이는 쉽지 않고 그럴수록 딸에 대한 미안함이 자라나 홀로 흐느낍니다. “아빠랑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게 좋아.”(소피) 세상에서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아빠가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딸은 기쁩니다. 그렇게 서로를 확인했던 어린 날의 여행이 아마도 캘럼과 소피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날’의 아빠처럼 30대가 된 딸의 삶에서 아빠와 함께했던 기억은 어떤 빛깔일까요. 영화는 답을 주는 대신에, 관객들 스스로 저마다의 ‘그리운 이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야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어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때의 당신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어느 관객이 올린 댓글이 ‘애프터썬’이 같이하고픈 감상의 길일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제목 ‘애프터썬’은 ‘햇빛에 탄 피부에 바르는 크림’이란 뜻입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아빠와 딸은 서로에게 크림을 발라주지요. 마치 우리네 가슴에 담긴 ‘보고픈 이들의 기억’이 상처를 덮어 낫게 해주는 처방인 것처럼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언제나 내 안에서 고된 인생의 치료제처럼 살아있음을 발견하는 일… 그 또한 ‘작은 부활의 기적’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