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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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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이 자전 수필집 「눈물꽃 소년」(느린 걸음, 2024)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작가는 초등학생 시절로 되돌아가 그때의 눈으로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 자연과 학교와 하느님을 바라보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독자는 가난과 결핍과 열망으로 가득 찬 시절을 살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소년 ‘평이’(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이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제는 사라진 자신의 유년기와 잃어버린 순수함을 추억하게 된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동심이 심연에서 깨어날 때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문한다.

 

평이가 자라는 남도의 시골 마을 동강은 작은 우주다. 거기에는 신앙의 요람이었던 동강공소와 멕시코 선교사 호세 신부, 학교와 반 친구들, 배고픔을 채우듯 많은 책을 읽게 해 준 선생님과 도서실, 밤하늘의 별들과 자연, 할머니와 어머니, 애틋한 첫사랑 여자애까지 있다. 작가는 오늘날 도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원형의 것들, ‘순수하고 기품 있는 흙 가슴의 사람들’을 소환하면서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가슴 시린 풍경’을 그려낸다.

 

 

어린 평이는 벙어리 처녀 연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요, 입이 있어도 말 못하고 맘이 있어도 쓸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의 입이 되고 글이 될라요.” 첫사랑 소녀를 만나서는 “나처럼 외롭고 혼자인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 눈물이 되고 힘이 되는 그런 시를 쓰겠다”고 다짐한다. 「눈물꽃 소년」에는 훗날 박노해 시인의 삶과 문학을 만든 싹이 다 담겨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직관, 강직함과 인내, 약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아우르는 인간의 심성과 자세의 큰 부분은 유년기에 형성된다. 그런데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루며 쉼 없이 달려온 우리는 그 순수한 눈길과 동심을 잃어버렸다. 어른들은 자신의 동심을 지워버렸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동심마저 타락시켰다.

 

 

장래 희망을 ‘건물주’라 말하는 초등학생이 다른 급우를 ‘빌거’(빌라에 사는 거지), ‘휴거’(임대아파트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 비하하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부동산이 계급이 된 사회’에서 어른들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의대 준비반을 만들어 선행학습을 시킨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물신주의 속물주의, 무한 경쟁의 사고와 의식을 심어준다.

 

 

“세상이 하루하루 독해지고 사나와지고, 노골적인 저속화와 천박성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는 지금”, 작가는 “길잃은 날엔 자기 안의 소년 소녀로 돌아가기를” 권한다.

 

 

우리에게도 ‘영혼의 순수가 가장 빛나던 시간’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천진무구함이 상처받은 모습이 지금의 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작가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영원한 소년 소녀가 우리 안에 살아 있다”고 속삭인다. 그 소년이 우리에게 눈물꽃을 건넨다.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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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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