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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짐이 익숙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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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났다. 원래도 정치 뉴스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고 지냈다. 선거 공보물이 사제관에 도착한 이후에야 우리 동네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가 누구인지,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해 어떤 위성 정당이 생겨났는지 알 정도였다. 그마저도 자금력 부족으로 공보물을 보내지 못하거나 보내지 않은 정당이 훨씬 많았다. 천성이 얕고 지력이 일천해 골치 아픈 것은 딱 질색이고, 그리하여 뉴스도 일절 보지 않았던 게으름을 기워 갚기라도 하듯, 검색창을 두드려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정당투표 용지에 기입될 정당의 수를 찾아보고선 기함했던 기억은 이제 추억이 됐다. 과연 다음 총선에서 얼마나 더 긴 투표용지를 만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난 2012년부터 주교회의는 총선 및 대선과 같은 주요 선거를 앞두고 정당(총선) 및 후보들(대선)에게 정책 질의서를 보내고 그 답변을 발표해 신자들로 하여금 복음의 가치와 교회의 가르침에 좀 더 부합하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주교회의는 주요 4개 정당에 정책 질의서를 보내 3개 정당으로부터 받은 답변을 발표했고, 각 교구별로도 교구장 재량에 따라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정책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받아 발표하기도 했다.

 

 

주교회의가 보낸 질의서는 노동, 민족화해, 사회복지, 생명윤리, 생태환경, 여성, 정의평화, 청소년 등 8개 분야 43개 문항으로, 각 분야는 모두 한국교회가 관심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주교회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답변 가운데 노동(노란봉투법 입법 재추진), 생태환경(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및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고준위방사성폐기물특별법 제정,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정의평화(전세사기특별법 제정, 생명안전기본법 및 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 분야에서 정당 간 의견 차이가 크게 드러났다.

 

 

문제는 이런 의견 차이가 정당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 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자들이 자신의 지지 정당의 입장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정당 간 의견 차이가 신자 간 의견 차이로 전이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목 일선에서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현안에 따라 교회의 입장이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어 따라가기 어렵다”며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복음이나 교회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보라”고 권면하면 대부분은 적어도 사제 앞에서는 수긍하고 돌아가긴 하지만, “교회가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는 단순히 세상을 영과 육, 성과 속으로 나누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이를 도구 삼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모습은 교회 안에서만 유효한 것으로, 다시 말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조차 자기와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인 복음과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가르침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못한다면, 그가 가슴에 새기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분열적이며 헛된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구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온전한 존재일 텐데, 정작 우리는 우리의 육신이든 영혼이든 절반만 구원받고자 하는 꼴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속에 솟아난다. 갈라짐이 익숙한 세상이라곤 하지만,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도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를 증언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조차 갈라짐에 아파하며 회심하기보다는, 오히려 갈라짐에 익숙해져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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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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