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다녀온 어머니가 한숨을 쉰다. 채솟값이 금값이라더니, 한 개에 2000원꼴이라며 겨우 하나 사온 오이를 들어 보인다. 평소 알던 오이가 맞나. 비쩍 마른 게 이미 소금에 절여진 것만 같다. 집에서 먹는 냉면을 좋아하는데, 배부른 기색을 보이니 “남길 거면 오이라도 다 건져 먹어라”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최근 정부의 물가 안정책이 반영되면서 다소 나아졌지만, 천정부지로 솟은 채솟값으로 가정마다 허리띠를 바짝 조이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으나 기후 변화가 작물 생산량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한국의 기후 위기’를 주제로 선보인 다큐멘터리 영화 ‘바로 지금 여기’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모잠비크의 상황을 보여준다. 20년에 한 번꼴로 오던 홍수가 매년 발생하고, 과거에는 많던 참깨 등 농작물이 그곳에선 기후 변화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우리나라보다 ‘조금 일찍’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은 것뿐인데, 참깨는 할머니·할아버지를 통해 듣는 ‘전설의 농작물’이 되어 있었다.
남의 이야기 같은가. 우리나라에서도 기후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제주도에서는 일찌감치 기후 변화에 따라 열대 과일을 재배하는 농가가 크게 늘었다. 인기 작물의 경우 스마트팜(정보 기술과 장치들을 이용한 농작물 재배) 등을 통해 싱싱하고 탐스럽게 재배되어 밥상 위에 올라오지만, AI가 기후 위기의 근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 시골에서는 드넓은 논밭과 과수원 대신 우뚝 솟은 스마트팜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당연하게 누려오던 모든 것이 모르는 사이 기후 변화로 인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잃고 나서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간에도 잃어가고 있다.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 공동의 집 지구를 지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