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전능하고 자비롭다면 그저 사람들을 한 번 명령으로 구원으로 이끌면 될 것이지, 구태여 서역 땅 한구석에 예수를 내려보내 수난을 겪게 하는가? 예수를 통한 구원이 이루어졌는데 왜 여전히 사람들은 예수가 살아있을 때 제자들이 배반한 것처럼, 예전과 다르지 않은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비신자로부터 받아봤을 법한 날카로운 질문이다. 그러나 이 신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19세기 경북 상주에 살던 김치진(1822~1869)이다. 조정의 박해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던 시절. 김치진은 유학자로서 질서를 위협하는 천주교를 ‘제대로’ 비판해 민중을 계몽하고자 교리를 낱낱이 파헤치기로 했다. 신자들 사이에 잠입, 교리 서적을 입수해 읽고 또 읽은 끝에 27개 조목에 걸쳐 유학적 논리로 그 내용을 비판하는 책을 펴냈다. 그간의 단순한 ‘척사’(사악한 것을 물리침) 구호를 넘어, 천주교 교리와 교의를 뒤흔드는 시도로 평가받는 「척사론」이다.
안동교회사연구소(소장 신대원 신부)는 최근 총서 7번째 책으로 김치진의 「척사론」을 완역, 발간했다.(신대원 신부·원재연 교수 공동 역주/도서출판 동명)
안동교회사연구소가 천주교를 이토록 통렬히 비판한 유학자의 책을, 그것도 최초로 출판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척사론」이 맹목적이고 피상적인 기존 비판과 달리, 천주교와 유교 논리를 학문적으로 비교 검토할 수 있는 자료인 까닭이다. 아울러 21세기를 사는 신자들에게도 여전히 큰 효용을 준다. 김치진이 제기한 것과 같은, 신앙의 핵심 요소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연구소장 신대원 신부는 “「척사론」은 천주교 신자를 포함한 일반인들이 올바른 식별을 하도록 도울 것”이라며 “신자와 비신자들 사이의 인식 차이를 극복하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적 소통의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추천사에서 “교리 지식이 얕은 신자들은 자칫 신앙에 대한 혼동을 불러올지도 모르기에 김치진의 배척 논리들을 잘 식별해야 할 것”이라며 “식별을 분명히 가질 수 있다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확실한 천주교인으로 자리매김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