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참으로 감사했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끝까지 돌봐주시고 함께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교구민과 함께해온 14년에 세월을 뒤로하고 제2대 의정부교구장 자리에서 은퇴한 이기헌 주교는 주교로 25년, 사제로서 49년의 삶을 반추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주교는 “주교수품 전 들어간 피정에서 처음 접한 성경 구절이 ‘너와 함께 있어 주며, 너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겠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여호 1,5-6)였다”며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이 말씀이 지금껏 나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주교로서 첫 시작은 군종교구장이었다. 이 주교는 군종교구장으로 지낸 10여 년의 세월을 “그야말로 눈부시게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이라크·동티모르·레바논 등 전 세계를 누비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다. 이 주교는 “청년 사목의 큰 축을 담당하는 군종교구는 한국 교회의 미래”라고 말했다.
2010년 제2대 의정부교구장에 임명된 이 주교는 “전임 교구장 이한택 주교님에게서 ‘우리 교구 신자들은 신앙에 열심하고, 사제들도 신자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사목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교구장 일을 시작했었다”면서 “교구 설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모두가 열심히 살아준 덕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주교는 2015년 새로운 10주년에 대한 사목 서한을 발표하면서 △평신도 지도자 양성 △소공동체와 사회사목 연계 △노인사목 △사목연구소 기능 강화 등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현재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타교구의 모범이 되고 있다. 교구의 모든 사제와 면담했다는 이 주교는 “사목의 시작은 사제들이기에 사제단 일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요양원이 밀집된 경기 북부 지역 현실을 고려해 요양 전담 협력 신부를 파견하는 등 앞을 내다보고 과제를 수행했다. 평신도에게 귀 기울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히 이 주교는 “고향이 평양이기에 이주민과 난민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며 “주님 성탄 대축일은 꼭 이주민과 함께 보냈고, 난민 가정을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며 평양교구 신학생으로 입학한 이 주교는 최북단 교구장으로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줄곧 전해왔다. 이 주교는 “제가 사제품을 받을 즈음이면 통일이 될 줄 알았는데, 내년이면 사제수품 50주년이 된다”면서 “평화는 하느님이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며, 은퇴 후에도 민족 화해를 위한 기도가 제 삶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가장 보람됐던 순간도 “교우들과 함께 분단의 현장에서 기도하고 역사의 아픔을 되새겼던 때“라고 꼽았다.
그러면서도 이 주교는 “의정부교구가 민족 화해와 정의 평화 문제 등 현안에는 앞장서고 있지만, 영적 생활 증진 면에선 다소 부족함을 느낀다”며 “제3대 교구장 손희송 주교님이 기도와 성경 읽기 등 기본에 충실함을 강조하는 만큼, 앞으로 더 성장하는 의정부교구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주교는 지난해까지 교구 내 30곳 넘는 본당을 다니며 신자들과 함께 성체조배를 했다. 교구민에게 전하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 주교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선 하느님과 인격적인 만남 체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성경 읽기와 성체조배로 기도생활에 맛 들이고, 나아가 소외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그리스도를 만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주교는 4월 29일 주교좌 의정부성당에서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교구민이 함께한 가운데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교구장으로서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