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말씀을 통해 당신의 업적을 완성하시지만, 그 말씀의 실현은 인간이 처한 복잡한 삶의 아픔과 장애들과 함께 이어진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결함, 더 나아가 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은 실현을 이룬다. 전통적인 신학 안에서 이러한 신앙의 모습을 복된 죄(Felix Culpa)라고 불러왔다.
성경은 상당 부분 이 복된 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결국 ‘죄’란 아름답게 그려질 수 없는 인간의 분명한 아픈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성경이 전하는 많은 이야기는 본디 우아할 수가 없다. 결국, 성경은 우아하셨던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의 모습을 내려놓으시고 진흙탕과도 같은 인간의 삶 안에 깊이 찾아오시어 선포되고 그 안에서 실현을 이루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경의 이야기가 거북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며 당황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건 그만큼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삶 안에 깊이 내려오셨다는 반증일 것이다. 우리 각자는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고, 나 스스로도 바라보고 싶지 않은 어두운 내면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스스로도 대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어느 누가 찾아와 진지하게 바라봐 주었던가? 하느님의 말씀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 삶 안으로 찾아와 우리와 함께 벗하며 계신다.
좀 더 시선을 넓혀서, 우리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은 진흙탕과 같은 우리 인간사의 대표적인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함께 모여 보살핌을 받고 있는 곳에 찾아간 기자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전쟁이 무엇이라 생각하니?” “가장 나쁜 것이요.”
아브라함은 인간사에서 가장 나쁜 이야기,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하여 연약한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이 전쟁에 휘말린다. 이는 성경에 등장하는 첫 전쟁 이야기이다.
“신아르 임금 아므라펠과 엘라사르 임금 아르욕과 엘람 임금 크도를라오메르와 고임 임금 티드알의 시대였다. 그들은 소돔 임금 베라, 고모라 임금 비르사, 아드마 임금 신압, 츠보임 임금 세므에베르, 벨라 곧 초아르 임금과 전쟁을 벌였다. … 그러자 적군들이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모든 재물과 양식을 가지고 가 버렸다. 그들은 또한 소돔에 살고 있던 아브람의 조카 롯을 잡아가고 그의 재물도 가지고 가 버렸다.”(창세 14,1-12)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잡혀갔으며 그의 재산도 약탈당하였다. 아브라함은 즉시 롯을 구출하기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 자신의 집에서 훈련받은 장정들을 이끌고 단까지 좇아가 그들을 치고 약탈당한 재물을 가져오며, 롯과 함께 부녀자들과 다른 이들도 데려온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말미에 소돔 임금을 상대로, 되찾은 재물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몫으로 그 어떤 것도 돌리지 않는다.
아브람이 소돔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신 주님께 내 손을 들어 맹세하오. 실오라기 하나라도 신발 끈 하나라도 그대의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소. 그러니 그대는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소.”(창세 14,22-24)
권력과 소유욕으로 시작된 전쟁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관대함으로 막을 내린다. 아브라함은 이 덕목을 실현시키면서, 이 덕목의 원천이 하느님께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해준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신 주님께 내 손을 들어 맹세하오.”
아브라함은 전쟁에 승리하였지만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좀 더 가질 수 있었지만 자신을 위해서 어떤 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죄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전염병 확산과 전쟁, 기후위기가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누군가는 거창한 방식을 전할 수 있겠지만, 아브라함은 욕심없음과 관대함을 전해준다. 우리의 죄를 복된 죄로 바꿀 수 있는 분은 하느님 이외에 없다. 이 안엔, 우리의 죄를 복된 죄로 바꿀 수 있는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다. 바로, 욕심 없는 빈 마음과 내어주고 나눠주는 관대함일 것이다.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했으며, 예루살렘 프란치스칸 성서대학에서 성서 고고학 디플롬(diploma superiore)을 이수했다. 춘천교구 묵호, 퇴계 본당 주임을 지냈으며, 현재 교구장 비서 및 교구 성경 사목 담당 소임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