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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와 증오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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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가 끝나고 몇 주가 흘렀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총선 결과에 분명히 나타났지만 현실 정치가 여기에 부응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서로를 적대시해 온 집권 세력과 거대 야당이 머리를 맞대고 산적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가능할까?


많은 사람은 대화와 타협이 없고 일방적 소통과 대결만 있는 한국의 정치문화를 한탄한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이 지속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국회와 정치에 들어갈 여지도 점점 줄었다. 진영대결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적대감과 증오는 정치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깊이 배어있는 DNA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사회 곳곳에는 적대의 감정이 만연해 있다. 이제는 종교인들조차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총선 과정은 안타깝게도 일상화된 증오와 적대를 여과하거나 승화하지 못했다.


철학자 김상봉 교수는 이런 적대감의 뿌리를 백년 전 일제 치하에서 시작된 민족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에서 찾는다. “3.1 운동 이후 격화된 좌우 대립 속에서 적에게도 이성과 양심이 있으리라는 믿음은 서서히 사라졌다.” (「영성 없는 진보」 온뜰 2024, 이하 모든 인용).


이 두 진영의 반목은 남북 분단으로 이어졌고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초기에 자행된 민간인학살은 우리가 한 공동체에 속한다는 믿음을 송두리째 없애 버렸다. 그 결과 “정치는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과정이 아니라 동지와 적을 가르고, 그 적대적 대립 속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 목적이 되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진보 운동이 1980년대 이후 분노와 증오에 의해 추동되었다고 말하면서 아프게 지적한다. “차이를 적대적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건설적 협동이 되게 하는 것은 전체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세속화된 진보 운동 속에서도 보수화된 신앙 속에서도 우리는 이제 더는 전체에 대한 믿음을 찾아볼 수 없다. 모두가 자기가 선이라 믿으면서 남을 악이라 단죄하고, 남과 싸워 이기는 일에만 골몰한다.”


그에 따르면모두 전체로부터 이탈하여 치우져 있기 때문에 (...) 우리는 보다 높은 하나를 이루지 못하고 차이 속에서 적대적으로 분열한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분열상을 치유하려면 다름과 차이를 용인해야 한다.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도 전체 속에서 나의 일부라는 믿음이 우리 마음에 뿌리내릴 때 가능할 것이다.” (111쪽)


형식적 민주주의는 성취했지만 적대와 증오, 혐오와 배제가 고개를 드는 오늘날, 우리를 하나로 모아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 주목하는 것이 교회와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과제다. 우리 시대의 예언자다움은 거짓과 불의를 단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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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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