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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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어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김혜진 베로니카,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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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로비에서
가방만 덩그러니 놓인 곳에
자리잡고 앉았는데
다짜고짜 자리 비워달라는
무례한 말투에 언성 높아져

미사 참여할 때마다
예수님의 관용·이해·사랑 묵상하지만
일상에서는 나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내 모습
적나라하게 보게 된 사건


어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 본 한 주였습니다.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사회에서 말하는 어른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쓰일 것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업(業)인 저에게 어른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모범이 되며 존경받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고 그러다 보니 잘못된 행동을 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말과 글을 전공하다 보니 학생들이 사용하는 신조어나 비속어, 어투나 뉘앙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예의가 없다고 느껴지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대개는 저의 이야기를 수용해주는 친구들을 만나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학교 로비에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겪었습니다. 건물 로비는 공부나 담소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침 그중 사람은 없고 가방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곳이 있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십여 분이 지나자 자리를 맡아뒀던 학생이 나타나 자신의 노트북과 책을 펴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학생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저는 의자의 끝에 걸터앉은 채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한 학생이 옆에 오더니 다짜고짜 “일행인데요!”라고 하면서 자리를 비워달라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아마 “죄송합니다” 또는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앞서 하거나 “자리 좀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했으면 주저 없이 친구끼리 앉으라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을 테지만, 예의 없이 구는 학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저도 모르게 “저 보고 어떻게 하라고요?”라고 다소 공격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등의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서로 주고받은 이 짧은 말 한마디로 급기야는 옆의 학생까지 가세해서 좋지 않은 말들이 오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리를 떠나면서 “어른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좀 더 공손하게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불손하기는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요. 여기서 왜 어른이라는 말이 나오죠?”라고 응수를 하더군요. 제 입장에서 로비는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장소이고 나이 어린 사람이 윗사람에게 무례하게 말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데, 그 학생들의 관점에서 보면 저는 동의도 구하지 않고 옆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며 나이를 들먹이며 본인들을 압박하는 비합리적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님의 관용과 이해·사랑에 대해 묵상하지만, 실상 일상에서는 나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어른스럽게 행동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었는데, 요한 1서의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라는 말씀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만약 그날 그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다르게 말하고 행동할 것이지만, 지난 과거는 되돌릴 수 없으니 앞으로의 날들에는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이려고 합니다.


, 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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