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연구가들에게 교황을 제외하고 여섯 명의 중요한 고위성직자의 이름을 대라고 요청하면, 전문가들은 대개 유력한 교황 후보 이름을 댈 것이다. 여기에는 이탈리아주교회의 의장인 마테오 추피 추기경과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부다페스트의 페테르 에르되 추기경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튀르키예 이즈미르대교구장 마틴 크메텍 대주교, 남아라비아지목구장 파올로 마르티넬리 주교, 인도네시아 반둥교구장 안토니우스 프란시스쿠스 수비안토 부냐민 주교, 남아프리카공화국 움타타교구장 시템벨레 안톤 시푸카 주교, 인도 트리추르대교구장 앤드류스 타자트 대주교,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대교구장 하이메 스펭글러 대주교의 이름을 대는 전문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위기관리 전문 자문기관인 유라시아그룹의 클라프 쿠프찬 회장에 따르면, 이들은 교황청 연구가들이 언급했던 인물들보다 세계의 미래에 대해 할 말이 더 많다. 쿠푸찬 회장은 최근 외교 전문지 ‘포린 팔리시’(Foreign Policy)에 기고한 글에서, 향후 세계 지정학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줄 ‘신흥국’으로 6개 나라를 지목했는데, 이들은 이 6개 나라 주교회의 의장들이다.
쿠푸찬 회장이 언급한 신흥국은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브라질로 모두 G20에 포함돼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나라는 초강대국에 줄을 서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이 신흥국들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서방의 러시아 경제제재가 통하지 않고 국제통화기금(IMF)가 올해 러시아 경제가 0.7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주요 요인이다.
이 외에도 쿠푸찬 회장은 다극화된 세계에서 지역에서의 관계가 중요한데, 이 여섯 나라는 지역을 이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느 나라도 특정 이데올로기에 경직되지 않아 외교에 있어 더욱 현실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이익을 얻는다. 또 이들 나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과학과 공학 분야에 투자해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그의 분석이 맞는다면 세계 정치에서 교회의 역할은 크지 않아 보인다. 6개 나라 중 한 나라만 가톨릭신자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신자수 기준으로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가톨릭국가이다. 하지만 룰라 현 대통령과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양극화돼 있어, 일치를 외치는 교회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렵지만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재집권한 룰라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음이 잘 맞고, 브라질교회는 사회지향적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인도에서 가톨릭신자는 소수이지만 사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가톨릭신자는 380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6.3 차지하며, 이곳의 교회는 학교와 병원, 복지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사정도 비슷하다. 전체인구의 3 남짓한 신자수 830만 명이 있는 인도네시아 가톨릭교회는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있으며, 오는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도네시아 사목방문은 인도네시아 가톨릭교회를 알리고 교회의 영향력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경우, 가톨릭신자가 전체인구의 1.5밖에 되지 않지만 신자수로는 2000만 명이 넘는다. 인도 가톨릭교회는 콜카타의 성 데레사 수녀의 사례와 같이 사회복지 활동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는 좀 어려워 보인다. 튀르키예의 가톨릭신자는 대략 2만5000여 명이고 대부분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가톨릭신자는 130만 명 정도 되지만 대부분 필리핀과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레바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로 제한된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외교와 정치 측면에서,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두 가톨릭교회를 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터키와 교황청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고 있는 러시아를 소외시키지 않는 공통된 정책을 펴고 있으며, 교황은 평화를 위한 터키의 활동을 격려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도 비슷하다. 교황청은 지난해 오만과 외교관계를 맺는 등 아라비아반도의 모든 나라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들 신흥국들의 가톨릭교회가 적어도 사회교리와 교황청의 외교 정책에 맞게 국가 정책을 결정하도록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견지에서 앞서 말한 6명의 고위 성직자들은 향후 국제 무대에서 할 말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런 상황은 가톨릭교회가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은 주로 로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제 행동은 각 나라와 지역에서 일어난다. 쿠푸찬 회장이 기고에서 판을 깐 것처럼, 이들 신흥국들의 가톨릭교회는 분명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