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총선의 민심을 인정하고 총선 패배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렸다. ‘많이 부족했다’, ‘민생이 어려워 많이 무겁고 송구스럽다’, ‘질책과 꾸짖음을 깊이 새기겠다’, ‘저와 정부부터 바꾸겠다’ 등 그동안 대통령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낮은 자세’의 화법이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대통령은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었다”며 취임 이후 처음으로 ‘사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김 여사의 또 다른 의혹인 주가 조작(도이치모터스)에 대해선 전 정부 수사를 언급했다. “수사를 할 만큼 했는데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따라서 특검 주장은 ‘모순’이고 ‘정치공세’라고 규정했다.
전 정부 수사 당시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으로 수사지휘 라인에서는 배제됐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대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윗선’ 눈치 보기와 김 여사 소환 불응 등으로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 현재 주가조작 가담자는 대부분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김 여사는 현 정권에서 최소한의 수사도 받지 않았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윤 대통령의 견해는 모순이었다. 국군 통수권자로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라며 “경찰과 공수처의 엄정한 진상 규명을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해가 안 되면 자신이 먼저 특검을 주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일 민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공수처에 대한 대통령의 믿음은 이어진 설명에서 불신으로 바뀌었다. 윤 대통령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공수처의 출국 금지 조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출국 금지를 알지 못했으며 왜 소환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수사는 못 믿겠지만, 다시 믿어보자는 의미로 해석하기엔 진정성과 신뢰성이 떨어진다.
국민 67가 ‘채 상병 특검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의 핵심 쟁점은 수사 외압에 대통령과 대통령실, 즉 ‘윗선’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해병대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하며 이 전 장관을 질책했는지에 대한 기자 질문에는 구체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기자회견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의 반응은 대체로 엇갈렸다. 불통과 독단에서 벗어나 소통의 물꼬는 텄지만, 국정 기조의 변화를 기대하긴 아쉽다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대통령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어떤 행보를 해야 할까?
소통과 협치 의지를 밝힌 만큼 이젠 국정 기조의 실질적인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아울러 국민의 정서와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 발언 때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고 쓰인 영어 명패가 앞에 놓였다. 한글이 공용어인 나라에서 해석하기도 어려운 영어 문구를 앞에 놓고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는 대통령을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어색함과 아쉬움을 넘어 자괴감이 든다. 차라리 대통령이 직접 쓴 한글 명패를 놓았으면 어땠을까?
또 언론과의 소통은 국민과의 소통이란 점에서 이번 기자회견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총선 패배 후 처음 열린 기자회견인 만큼 정치 현안과 국정 운영에 대한 질문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분야별로 나눠 진행되다 보니 정치 질문과 언론사의 질문권은 의도적이고 기술적으로 통제됐다.
소통이 성공하려면 고백과 경청이 필수적이다. 일방적인 설득은 소통이 아니다. 실정(失政)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민심을 수용해 새로운 결단을 내리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