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이며 홍보 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심을 기뻐하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라는 신부님 말씀으로 5월 둘째 주 주일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아무런 생각이나 감흥 없이 습관적으로 미사에 임했겠지만, 이날은 미사 시작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지향을 하고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일이 귀하게 여겨져서 봄부터 매주 생미사 또는 연미사를 드리고 있는데, 신부님께서 깜빡 잊으시고 미사의 시작과 함께 언급해 주셔야 할, 즉 미사에 봉헌한 사람들의 이름과 본명을 언급하지 않고 바로 미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때부터 ‘미사 후에 사무실에 들러야겠네. 내가 미사 지향 날짜를 잘못 쓴 걸까? 왜 누락된 걸까?’ 등 온갖 분심(分心)이 들기 시작하여 미사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20여 분이 흐르고 복음 말씀 낭독 차례가 되었을 때 신부님께서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미사 시작할 때 말씀드려야 했는데 빼먹었네요. 오늘 미사는 ?을 위한 생미사와 연미사, 이 미사에 참여하신 모든 가족의 평안을 위해 봉헌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미사 예식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미사 후에 친하게 지내는 후배에게 주일 미사 때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후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사 때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고 봉헌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대요. 저도 아는 신부님께 여쭤본 적이 있는데 이름을 말하든 말하지 않든 봉헌자의 지향은 미사 안에서 모두 이루어진다고 하셨어요.”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과 마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오묘해서 이성이나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미사를 준비하면서 또 미사에 참여하면서 저는 이미 제가 기도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 감사하고 충분한 일인데,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남짓의 주일 미사에 마음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이 미사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도 미사에 참여할 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바로 마음이 어수선해지면서 주의가 흩어지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돌이켜보면 마음을 오로지 한 곳에만 기울이는 전심(專心)과 온 마음인 전심(全心)으로 미사에 참여했던 경우는 손에 꼽을 만큼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극한의 고통과 결핍에 처해 기댈 곳이 오직 주님밖에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설렁설렁, 대충대충, 형식적으로 미사와 기도를 드리는 저를 반성합니다.
1세기 말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드린다는 의미로 미사를 ‘감사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미사의 본질은 개인의 소망을 희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선택과 부름을 받은 존재로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일임을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고 미사 중에 들었던 저의 분심을 부끄러워하기보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라는 복음 말씀을 기억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김혜진(베로니카, 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