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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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하느님 것이기에 그분이 뜻하시는 대로(김혜진 베로니카,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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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어버이날은 딸과의 냉전으로 좀 우울했습니다. 저희 집안은 생일을 비롯해 여러 기념일을 살뜰히 챙기는 편인데, 그 가풍을 이어받아 딸아이를 키우면서 부탁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특별한 날에 선물은 준비하지 않아도 편지 한 통만은 꼭 써달라고 했고, 고맙게도 제 딸은 글자를 깨친 네 살부터 지금까지 스무 해가 넘는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제 말을 들어 주고 있습니다. 진심을 담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는 그 어떤 선물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소중하게 여겨 저의 보물 상자에 차곡차곡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딸아이는 편지 대신 A4 3매에 해당하는 긴 내용을 워드 문서로 작성해서 보내왔습니다. 첫 문단과 끝 문단만 감사 인사이고 대부분은 저와 불거졌던 일에서 서운했던 점, 상처받았던 점, 앞으로 바라는 점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물론 자기 성찰을 곧잘 하는 아이답게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딸이 전하고자 하는 진짜 속내보다는 저를 비난하는 듯한 구절에만 머무르는 ‘선택적 읽기’를 하여 저 스스로 생채기를 내었습니다. 딸이 편지에서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화해였지만 이미 마음이 상해 있던 저는 딸의 진의를 편협하게 해석하고 어버이날 이후로도 며칠을 혼자 꽁해 있었습니다.

이후 딸과 대화를 좀더 나누면서 갈등을 풀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다가 체나콜로 대피정에서 자식은 내 몸으로 낳지만 내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 것이기에 하느님 뜻대로, 내가 잠시 맡아서 양육하는 것이므로 교회에 의탁해서 키워야 한다는 주교님의 강론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맏이나 맏배는 모두 하느님의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하느님께 바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탈출 13,2)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한 사실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요즈음의 대부분 가정에서는 자녀를 하나만 낳으니까 모두 하느님의 소유이고 그분이 뜻하시는 대로 교회 공동체와 함께 키워야 하는 것은 신자로서의 마땅한 의무가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너는 복도 많다. 애를 거저 키우네. 본인이 다 알아서 하고 정말 좋겠다. 신경 쓸 게 하나도 없잖아.” 주변 사람들 말대로 제 딸은 무던하고 지혜로운 편이어서 부모가 걱정하게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잘 성장해준 딸에 대한 고마움과 대견함을 마음 한 켠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 아이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아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제 생각과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하면 화를 내고 질책을 일삼았습니다.

오늘의 제 신앙 고백입니다. “하느님, 당신의 사랑과 은총으로 제 아이를 돌보아 주고 계심에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대한 굳건한 믿음과 순종으로 인내하면서 예수님을 지켜보셨던 성모님을 본받아 당신께서 잠시 제게 맡기신 아이가 주님의 귀한 도구로 쓰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김혜진(베로니카, 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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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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