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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묘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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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김금화 만신이 제자들을 데리고 파주의 ‘적군묘지’에 가서 북한 군인들의 넋을 달래는 굿을 하는 광경을 기록 영화로 보았다. 만신은 아침부터 해가 빠질 때까지 기진맥진할 정도로 춤을 추며 많은 무덤을 돌면서 애를 썼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마침내 접신이 된 그의 입에서는 분노한 군인들의 욕설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오마니!”하고 울부짖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억울함과 설움, 아픔과 그리움에 가득한 소년병의 울부짖음은 한동안 내 귓가를 맴돌았다.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5번지에 있는 적군묘지는 이제 ‘북한군묘지’로 불린다. 같은 곳에 있던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 437명의 유해는 2014년 3월 이후 모두 송환되고 비석만 남았다. 북한군의 묘석에는 이름과 계급, 전사한 날짜와 장소가 표시되어 있고 이름이 없는 경우도 많다. 1·21 사태를 비롯해 여러 시기에 남파된 ‘무장공비’들도 이곳에 묻혀 있다. 이름도 장소도 없이 인원수만 표시된 최근의 무덤은 잠수함 침투 같은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북한군이 아닐까 짐작한다.


몇 해 전부터는 의정부교구가 위령의 달에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미사를 드리면 보수 단체에서 와서 항의와 시위를 하곤 했다. 왜 우리의 원수이자 주적인 북한 군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느냐는 것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우리 세대는 어릴 때 6·25 노래를 수없이 불렀고 지금도 그 가사와 멜로디를 뚜렷이 기억한다. 노래 속의 원수는 다름 아닌 우리 동족이자 형제였다. 세월이 흐르고 정세가 변하자 그 원수를 다시 겨레, 동포, 민족으로 부르게 되었다. 남북 화해의 움직임은 1970년대에도 1980년대도 있었고 2000년대에 와서는 남북 정상회담도 여러 차례 열렸다. 하지만 평화와 상생, 화해와 협력은 어느새 먼 이야기가 되었고 남북은 다시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며 공갈과 협박의 언어를 남발하고 있다. 북한은 다시 혹은 여전히 주적으로 남았다.


전쟁은 인간의 가장 야만적이고 야수적인 속성을 드러내면서 자신과 상대 모두를 비인간화시킨다. 어쩌면 증오와 복수는 용서와 화해보다 더 원초적인 인간의 감정인지 모른다. 한국 사회를 보면 전쟁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대물림되는 듯하다. 그것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기에 형제와 이웃에게 증오의 언어를 내뱉으며 대화가 단절되고 진영논리가 강화되는 것은 아닐까?


이 땅의 그리스도인은 이 지긋지긋한 대결과 증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로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던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 공동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어떻게 ‘상처받은 치유자’가 될 수 있을까?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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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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