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가르멜 수도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20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첫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수도회는 학술대회에서 한국 진출 50년의 여정을 돌아보고, 창립자 성녀 데레사로부터 이어오는 선교 정신을 재정립했다.
‘한국 진출 50년 약사’ 발표에 이어, 김광서(가르멜 수도회) 신부가 ‘가르멜 카리스마의 기원과 한국 가르멜 정체성 재정립 문제’를, 윤주현(가르멜 수도회) 신부가 ‘맨발 가르멜 수도회 초기에 선교 카리스마의 기원과 발전’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인섭(가르멜 수도회) 신부는 ‘한국 가르멜 초창기 엄격한 금욕적 수도 생활의 문화적 영적 배경’을 발표했다.
한국 남자 가르멜 수도회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중반 프랑스 아비뇽 아키텐 관구에 입회해 양성받은 한국 성소자들에 의해 시작됐다. 그 중 가르멜 회원이 된 박병해(스테파노)·정대식(프로리아노)·박태용(요한) 신부가 50년 전인 1974년 7월 입국해 지금의 서울 신학교 뒤편 삼선교 자리에 둥지를 틀고 그해 9월 8일 창립 미사를 봉헌하면서 한국 남자 가르멜 역사가 시작됐다.
가르멜 수도회는 2001년 한국 지부에서 준관구로 승격된 후 2009년 5월 파티마에서 열린 세계 가르멜 총회 때 관구로 승격됐다. 총평의회는 관구 승격과 동시에 한국 관구에 중국 선교를 일임, 다른 나라에 가르멜 영성을 전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 관구 소속으로 서울 명륜동에 위치한 관구 본부 수도원을 비롯해 인천·마산·광주·성주·LA·대만 신주 등지에 7개 수도원이 있으며, 종신서원자 47명과 유기서원자 5명, 수련자 1명, 청원자 3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광서 신부는 “흔히 가르멜 수도회는 전통적으로 ‘관상’ 수도회로 분류하곤 하지만, 사도직 특히 ‘선교’에 대한 비전이 관상과 함께 중심적인 카리스마”라고 강조했다. 가르멜 수도회가 시작될 당시, 가르멜 산에서 은수생활을 하던 초기 회원들은 은수자였다. 시작은 관상 수도회였다. 김 신부는 “하지만 16세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여러 이유로 완화된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며 “선교와 기도·형제애가 데레사적 카리스마의 세 가지 근본 요소”라고 전했다. 그렇게 예수의 데레사에 의한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가 창립됐고, 남자 가르멜 수도회는 태생부터 교회적이고 사도적이며 선교적인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공동체라고 밝혔다.
윤주현 신부는 “한국 관구는 지난 2009년 중국 선교를 위임받아 새롭게 성장해가고 있다”며 “하지만 대다수 회원의 이해 부족으로 중국 선교는 10년간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이제 사도직, 특히 선교가 맨발 가르멜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중심축임을 받아들여 가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인식 변화에는 중국과 대만에서 투신하고 있는 여러 회원들의 역할이 컸다”고 밝혔다.
윤 신부는 또 “한국 관구는 초기 약 35년간 맨발 가르멜 수도회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 ‘관상’만을 강조했다”며 “이제 한국 진출 50주년을 기념해 수도회가 지닌 근본적 카리스마 가운데 하나인 ‘선교’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관구의 쇄신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창립자 성녀 데레사의 정신을 새롭게 구현하는 길이자, 근본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맡겨진 사명을 충실히 완수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