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장난감이 무서워하는 병원이 있다. 이 병원에서는 몸이 해체되는 건 물론이고, 스프링 교체·납땜 등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할아버지, 제조업 분야에서 장비 좀 다뤄본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아기상어’·‘콩순이’들을 요리조리 뜯어 부품을 교체한다. 모빌부터 소리 나는 불자동차·요술봉·코딩 컴퓨터·기차·변신 로봇·공룡 등 이곳에서 치료받은 장난감 환자 수를 다 헤아리긴 어렵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시민지하도상가에 있는 ‘키니스 장난감병원’. 월~금요일 은퇴한 할아버지 12명이 전국에서 실려오는 장난감을 고치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병원을 방문하려면 먼저 온라인 진료실에서 ‘입원치료 의뢰서’를 작성해야 한다. 김종일(요셉, 78) 병원 이사장이 의뢰서를 확인, 완치 확률이 70 이상일 때 입원 절차를 밟는다.
입원은 택배와 방문으로 나뉜다. 치료비는 무료. 지금까지 7만 8000여 명의 손님이 장난감 병원을 찾았고, 수리한 장난감만 10만 개가 넘는다. 병원 로비 벽에는 전라도,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고사리손으로 써서 보내온 감사 편지가 붙어있다. 해마다 4000~5000개의 장난감이 할아버지들의 꼼꼼한 치료를 받고 다시 생명을 얻는다.
이들이 장난감을 수리하기 시작한 건 2011년. 35년간 인하대 금속공학과 교수를 지낸 김종일씨가 뜻있는 동료 교수와 지인 4~5명을 모아 ‘키니스 장난감병원’을 설립했다. ‘키니스(Kinis)’는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노인을 뜻하는 ‘실버(Silver)’의 철자를 조합했다. 장난감을 매개로 한 세대 간 공존이라는 병원 목표를 이름에 담았다. 기증받은 장난감을 바꿔가는 ‘아나바다 본부’도 있다.
김 이사장의 꿈은 “장난감 없이 크는 아이들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는 장난감의 부익부 빈익빈을 없애고 싶다. 13년째 장난감을 수리해온 그는 장난감이 고장 난 사연과 상태를 보면 각 장난감이 아이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대부분 형이나 누나에게 물려받거나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구입한 장난감이 많다. 7년 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6살 아이의 엄마가 보내온 장난감과 편지는 마음에 남아있다.
김 이사장은 “아무리 새 장난감이라도 어떻게 가지고 놀았느냐에 따라 30는 고치지 못하는데 그땐 마음이 아프다”며 “전자제품은 물과 상극이기에 물에 빠트리거나 어떤 오물이 묻었느냐에 따라 수리 가능성이 달라진다”고 했다. 치료한 장난감을 아이들이 다시 갖고 노는 동안 잠시 한숨 돌릴 부모를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는 처음 사비를 들여 건물 대여비와 장비, 공구를 마련했다. 장난감 수리를 맡을 봉사자를 모집하기도 쉽진 않았다. 그러나 이곳은 은퇴 후 재능을 발휘할 봉사활동도 제공하고, 장난감이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일도 막는 일도 도모한다. 기증받은 장난감은 필요한 어린이와 기관에 기부한다.
“노인네들한테는 남는 게 시간이라고 하잖아요. 정년 후 남아도는 시간에 하는 봉사가 아닌, 내 소중한 시간과 돈이 들어간 진정한 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중 9개월 아기를 키우는 한 여성이 고장 난 장난감을 들고 문을 두드렸다. 서울 강서구에서 지하철을 타고 온 정유진(39)씨는 “물려받은 건데 버리기 아까워 알아보다 인터넷으로 장난감 병원을 알게 됐다”며 “어르신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각박한 세상에 아이 키울 맛이 난다”며 감사했다. 문의 : 032-716-6422, 키니스 장난감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