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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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평화칼럼] 교회의 믿음

이상근 마태오(미국 테네시 오크릿지 국립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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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미국 테네시 낙스빌에는 한인 천주교회가 없다.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우리 한인들은 각자의 지역 미국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한 달에 두 번 2시간 거리 내쉬빌에서 오시는 한인 신부님께서 주례하는 한국어 미사를 위해 주교좌성당에 모인다. 이렇게 한국어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귀한 기회이다 보니, 십여 년 전 한국에 살 때는 너무나도 당연했던 한국어 미사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날도 한국어 미사가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조금 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얼굴들이 미사에 참여했다. 미국인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온 방문객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국인이 아닌 것이 분명히 외국인인 그들이 우리 한국어 미사에 함께한 것이다.

나는 그날 미사 해설을 맡고 있었는데 해설자석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누구일까 궁금해했다. 사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굳이 한국어 미사에 참여할 이유는 없으니 더욱 그랬다. 비록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미사에 참여한 그들의 모습은 매우 경건하고 거룩해 보였다.

미사가 끝난 후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환영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성당에 기도하러 왔다가 한국어 미사가 봉헌되는 것을 보고 참여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비록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느님을 느낄 수 있었고, 환영해 주어서 고맙다면서 성당을 떠났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미사를 봉헌하면서도 거룩한 마음으로 임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의 힘을 느꼈다. 모국어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이지만, 때로는 낯선 언어로 바치는 미사에 참여해 얻는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어로 진행되는 미사에서도 속으로 그들의 언어로 함께 신앙고백을 하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평화를 빌고, 성체성사의 신비에 함께 참여했으리라 생각하면서 보편 교회가 가진 일치하는 신앙의 힘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2021년 낙스빌교구가 주최한 다문화 다언어 묵주기도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이날 나는 한국어 화자의 대표로 참여했는데, 주어진 역할은 매 단을 마치는 ‘영광송''을 한국어로 바치는 것이었다. 이날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나중에 헤아려보니 무려 14개의 언어로 묵주기도를 함께 바쳤다.

각자의 언어로 각자 바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 특별했다. 이를테면 영어로 주님의 기도를, 그리고 여러 언어로 돌아가며 성모송을, 그리고 한국어로 영광송을 바치는 형식이었다. 참여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봉헌되는 주님의 기도·성모송·영광송을 들으면서도, 모두 마음속에서는 각자의 언어로 일치된 기도를 하는 진귀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성령 강림 때 제자들이 외쳤던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사도 2,8)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날이었다.

생각할수록 신비롭고 놀랍다. 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 미국에서, 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수많은 장소에서 온갖 언어로 매일 미사가 봉헌되고, 같은 성경을 읽으며, 함께 성체를 모시고, 기도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을 것이다!

비록 나 하나의 믿음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일치된 ‘교회의 믿음’은 정말 아름답고 놀랍고 위대하다. 나는 그것에 큰 위안을 느낀다. 이것이 우리가 미사 중에 이렇게 매번 기도하는 이유일 것이다. 주님!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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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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