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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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와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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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한국인 사제였던 최양업 신부는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가 양반들을 복사(보좌관격)로 쓴 폐해를 분명히 보았다. “그 복사들은 크게 비난받을 짓을 많이 범하고서도 양반임을 내세워 항상 거만하게 행세를 부려 모든 교우들한테 미움을 샀습니다. 그러나 주교님은 유독 그들만 사랑하시고 신임하시어 그들하고 모든 일을 의논하셨습니다.” 페레올 주교 사후에 최 신부가 은사인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1857년 9월 15일자)의 한 대목이다. 이 편지를 보면 당시 조선에서 양반에 대한 여론이 얼마나 나빴는지를 알 수 있다.


“모든 백성이 양반 계급의 독선, 오만, 횡포, 부도덕이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고 백성들의 온갖 비참의 원인임을 인정하고 지겨워합니다.”


최 신부는 신분제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교회 안에서 더 기울게 만든 장상 탓에 신자들 사이에 불화가 심해졌고 의분을 느끼거나 자포자기에 빠지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전한다. 그래서 그는 페레올 주교에게 여러 차례 편지와 면담을 통해 양반 출신 복사들을 내보내라고 진언했지만 꾸중만 들었고 복사들에게 큰 미움만 샀다.


최양업 신부는 양반 제도가 복음에 어긋나고 그리스도 정신에 위배된다는 분명한 의식이 있었다. “양반을 인정하는 (계급) 제도하에서는 형제의 우애와 애덕이란 있을 수 없고 천부적 인권은 완전히 무시됩니다. … 인재를 등용할 때 출생 성분을 따지지 않고 재능과 인격만 평가한다면 고질적인 신분 차별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최 신부는 선교사 사제들이 조선에 오기 전에 미리 조선의 현실과 풍습, 민중의 사고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양업 신부가 활동하던 때로부터 한 세기 반이 흘렀다. 한국이 ‘새로운 신분제 사회’라는 주장에 대해 3분의 2 이상이 ‘그렇다’고 응답한 연구조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었다. 새로운 신분제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였고, ‘불평등한 정치·사회 구조’가 그 뒤를 이었다. 혈연, 지연, 학연, 개인의 학력과 경쟁력은 미미한 것으로 나왔다. 점점 심해지는 부의 대물림 현상을 교회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교회는 이 새로운 신분제로부터 자유로울까?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해 힘쓰고 기도하는 지금, 신분제와 양반에 대한 그분의 말씀도 한번 귀담아들으면 좋겠다. 오늘날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 상충하는 불평등한 구조나 관습이 남아 있지는 않은가?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혹시 ‘새로운 양반들’이 있지는 않은가? 평신도들이 세운 교회라고 자랑하는 한국교회가 여전히 혹은 더욱 성직자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지는 않은가? 꾸중을 들으면서도 교구장 주교에게 쓴소리를 계속했던 최양업 신부의 믿음과 용기를 생각한다.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 그동안 ‘신한열 수사의 다리 놓기’를 집필해 주신 신한열(프란치스코) 수사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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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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