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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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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6월 25일 수원교구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 중에는 ‘고향의 봄’이 울려 퍼졌다. 미사참례자 중 많은 이에게 통일이 오지 않으면 발 디딜 수 없는 고향이기에, ‘통일’이란 말 한마디 없이도 통일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민족화해위원회에서는 이들을 북향민(北鄕民)이라 불렀다. 이북 땅에 고향이 있는 이들. 실향민이란 말도 있어서인지 애틋하기도 하고, 더 가깝게 느껴진다.


북향민은 공식적으로는 ‘북한이탈주민’이라 불린다. 아무래도 ‘이탈’이라는 말이 있어서인지,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이탈’이란 말이 주로 정상적인 범주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탓이다. 한때 ‘새터민’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땅이 언제까지고 ‘새터’로 남아서는 안 될 노릇이다.


북향민 말고도 우리가 긍정적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이들은 더 있다. 이를테면 ‘농인’(聾人)이다.


언젠가 취재 중 박민서(베네딕토) 신부가 농인과 청인(聽人)을 설명해 준 적이 있다. 흔히 농인과 청각장애인을 동일한 뜻으로 생각하지만, 청인이란 말과 함께 사용하면 ‘청각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농인)과 ‘청각을 사용하는 사람’(청인)이 된다. 호칭만 바꿔도 ‘장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서, 동등한 이웃이라는 긍정적인 관계로 변모한다.


이웃을 부르는 이름에 긍정을 담을까 부정을 담을까. 질문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로 답은 명확하다. 긍정의 언어는 우리 생각보다 큰 힘을 지닌다. 예수님도 우리를 ‘친구’라 부르지 않았던가.(요한 15,15 참조) 혹시 이웃을 부르는 말에 무심코 부정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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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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