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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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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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연기자로 안 돼. 다른 일을 선택해 봐.”


11살에 MBC 어린이 합창단을 시작으로 단역부터 차근차근 올라가 20살에 KBS 드라마 ‘학교3’의 주인공을 맡을 때까지 내가 꾸준하게 듣던 말이다.


“예술가는 술도 마시고 놀아보기도 하는 경험이 많아야 하는데, 넌 너무 모범생 마인드야.” “네가 엄청 이쁜 얼굴도 아니잖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하느님 도와주세요’라고 외칠 뿐이었다.


나는 연기가 좋았다. 한없이 못나 보이는 실제 내 모습을 숨기고 또 다른 내 안의 모습을 연기로 당당히 표현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다들 내게 연기자는 안 된다고 하니 늘 속상하고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고민을 안고 꾸역꾸역 버티며 연기자 활동을 이어오던 어느 날, cpbc 라디오에서 연락이 왔다. “인혜씨,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낮 12시부터 1시까지 시간 어떠세요? 어려운 이웃의 사연을 소개하고 청취자분들께 기부받는 프로그램 진행을 부탁드리려고요.”


지금 내 마음도 힘든데 힘든 이웃을 도와주는 프로그램 진행자라니…. 너무도 거절하고 싶었다. 그런데 불현듯 내 마음속 외침이 생각났다.


‘하느님 도와주세요.’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했던 내 괴로운 마음을 달래주시려는 하느님의 사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아름다운 사랑 아름다운 나눔’은 토·일요일 이틀 꼬박 진행해도 총 기부액이 몇백만 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이 나에게는 부담이 없게 다가왔다. 


덕분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주어지는 사연에 진심만을 담아 내 방식대로 프로그램 진행을 할 수 있었다. 제작진들은 연기자라는 나의 장점을 살려 사연자의 감정을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내레이션 파트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사연을 읽다 보면 때때로 목이 메이고 울먹거리는 소리가 그대로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기부액이 2배, 3배, 5배까지 크게 늘어난 것이다. 다들 그만하라고 했던 내 연기를 이 프로그램에서 유일하게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나는 하느님께서 내게 연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하신 이유가 여기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연기자로서 적합한 성격도, 뛰어난 외모도, 다양한 경험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하느님은 내게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더 많이 이해하고 잘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특별하게 내려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보람과 감사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시작한 지도 벌써 6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이 너무 기구하다 보니 진행하면서 우울해질 텐데 왜 임신해서도, 9개월된 갓난아기를 키우면서도 이 프로그램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는지 말이다.


가정폭력, 심각한 화상 환자, 미혼모. 기구한 이들의 삶의 이야기가 내게 전혀 우울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 말 한마디, 내 내레이션 한번이 이들에게 또 다른 희망의 날을 불러오게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보이기 때문이다.


연기자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이제 더는 없다. 내 연기가 이렇게 좋은 일에 쓰일 수 있음에도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재능을 직업으로 주신 하느님께 오늘도 감사드린다.



글 _ 이인혜 데레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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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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