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요한 세례자 성인의 탄생을 축하하던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 한 공장에서는 참담한 죽음이 발생했다. 일차 리튬 전지 업체인 아리셀에서 이주노동자 18명을 포함 23명이 사망하는 중대재해 화재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정직원이 아닌 인력 파견 업체 소속이었기에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위험한 유해물질을 다루는 공장이고 이번 참사 며칠 전에도 화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안전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중국인 17명, 한국인 5명, 라오스인 1명이 화마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화재 사고 열흘 뒤인 지난 7월 2일 오후 7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행동이 열렸다. 추모행동 소식을 듣고 교구 이주민, 난민 활동가들과 함께 그 행사에 함께하기로 했다. 행사 장소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현수막 속 글귀였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는 그말이 마음에 박혔다. 그들 모두 좀 더 나은 여건에서 가족들과 함께 할 날만을 위해 낯선 이곳에 온 것인데, 누군가의 무성의와 부주의와 안일함 때문에 이제는 영영 가족과 함께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경위나 책임 소재를 밝히는 일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참사 전에 일어났던 화재 때 제대로 된 안전 대책만 마련했다면, 아니, 노동자들에게 비상 탈출구 위치 및 탈출 방법 교육만 제대로 했더라면 스무 명이 넘는 귀한 생명이 사라지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뒤늦은 후회로 마음을 채울 뿐이었다.
이런 유의 비극이 처음은 아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김군 사망사고(2016년),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망사고(2018년), 평택항 이선호씨 사망사고(2021년) 등 몇 년마다 비극이 반복돼 일어나고 있다. 특히 김용균씨 사고를 계기로, 과도한 하청 및 재하청으로 제대로 된 교육이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성하는 분위기가 생겨나면서 ‘죽음의 외주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결국 ‘김용균 법’으로도 불리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법을 적용한 첫 판결 결과가 집행유예로 나오면서 실효성 논란이 일어나기도 하고 현 정권에서는 이 법이 기업의 사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개정할 뜻을 비추기도 하는 등,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번 참사는 이제 죽음이 외주화를 넘어 ‘이주화’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중국 국적 희생자 17명 중 대다수는 흔히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동포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재외동포 신분이기에 엄밀히 말해 이주민이라고 부를 수 없지만, 대한민국이 아닌 국가 출신으로 대한민국 국적자들이 기피하는 업종에 외주 인력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상황이 타 국적의 이주민들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외려 언어 장벽이 없기 때문에 소위 ‘가성비 좋은 이주노동자’로 취급되고 있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총 812명이며, 그중 이주노동자는 85명으로 10.4에 달했다. 올해 1분기 기준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자 비율은 11.2(213명 중 24명)로 벌써 지난해 비율을 넘어섰다. 지난해 이주노동자 수가 총 92만3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2841만6000명)의 3.2를 넘겨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통계청의 발표를 고려할 때, 이런 유의 참사가 반복될 경우 희생되는 이주민의 수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는 그들의 외침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