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현 신부(CPBC 보도주간)
“라면 맛의 놀라움은 장님의 눈뜸과 같았고, ‘불의 발견’과 맞먹을 만했다”고 말한 이는 소설가 김훈이다.(「라면을 끓이며」) 김훈 작가는 라면을 자신이 가진 그릇 중 가장 아름답고 비싼 도자기 그릇에 담아서, 깨끗하고 날씬한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먹는다고 했다. 작가가 ‘공손하게’ 라면을 먹는 이유는 라면의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 제조 기술을 배워와 1964년에 만들기 시작한 대한민국 라면에는 우리 현대사의 전쟁과 배고픔, 산업화와 민주화가 양념되어 있다.
이후 승승장구하던 우리 라면이 본격적으로 세계인의 입맛이 된 건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 덕분이다. 자본주의 본토이며 대한민국 혈맹인 미국에서 대상을 받은 영화가 좌파 영화로 분류되는 우리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영화 속 ‘짜파게티’와 ‘너구리’에 ‘한우 채끝살’을 넣은 라면에 입맛을 다셨다. 덕분에 농심은 포르투갈어·태국어를 포함해 11개 언어로 ‘짜파구리’ 레시피를 만들었으며, ‘너구리’에 들어가는 전남 완도 다시마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구하기 힘들었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던 라면이 이번에는 매운맛으로 성공을 거둔다. 최근 덴마크 정부가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중 일부에 리콜(회수) 명령을 내리자 어지간히 라면을 먹어본 이들도 더욱 ‘불닭볶음면’을 끓였다. SNS에는 생일 선물로 ‘불닭볶음면’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먼 나라 소녀의 모습을 보고 같이 기뻐했다는 댓글이 달리고, 중국 알리바바에서는 표지에 닭 그림 위치만 바꿔놓은 가짜 붉닭볶음면을 판다. ‘불닭볶음면’ 누적 판매량 18억 개. 전 세계인 4명 중 1명은 먹었다.
어찌 라면만 그러하랴. 세계인은 K팝을 흥얼거리며 춤을 따라 추고, K드라마에 나오는 구슬치기와 오징어 게임을 하더니, 이제는 끓인 K라면을 어설픈 젓가락질로 먹으며 환호하고 있다. 엘지나 삼성 TV에 나오는 축구선수 손흥민과 이강인의 플레이에 열광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자서전 「백범일기」 중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라며 문화강국의 꿈을 강조했는데, 이제야 그 꿈이 꽃을 피우나 보다.
지난 5월 서울대교구는 로마에서 열린 ‘국제 젊은이 사목자 회의’에 참석했다. 전 세계 교회에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비전을 알리고 젊은이들을 초대하기 위해서였다. 소개 자리에 참석한 해외 청년들은 K문화와 한국 교회 신앙을 접목한 발표에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한국에서 온 이들에게 한국 연예인 중 가톨릭 신자는 누구인지 물어보며 K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냈다고 한다.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전 세계의 청년들이 모일 것이다. 세계청년대회에는 가톨릭 신자를 포함해 모든 청년이 참가할 수 있다. 전 세계 청년들은 신앙 안에서 참된 길을 찾기 위해 순례를 걸을 것이다. 또한 청년들은 세계청년대회가 열리는 서울을 포함한 한국의 곳곳을 누비며 K팝·K드라마·K라면 등 그동안 동경해왔던 K문화를 체험할 것이다. 보통 청년대회가 열리는 기간 앞뒤로 참가 청년들은 주최 국가에 더 오래 머물다 간다.
그러기에 정부와 각 지자체, 기업의 관심과 후원은 소중하다. 세계청년대회는 가톨릭 청년들만의 잔치가 아니다. 세계청년대회를 통해 한국을 듣고 보고 맛본 청년들은 K문화의 홍보대사가 될 것이다. 세계청년대회를 통해 K문화는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다. 세계청년대회를 통해 K문화가 더욱 진격할 수 있도록 민관을 포함해 대한민국 모든 주체가 대회에 힘을 보태주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