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군 청천면 선평리에 위치한 시골의 작은 본당인 청주교구 청천본당에서 나눔의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 7월 본당의 가난한 교우 마춘옥(클라라)씨가 선종하면서 작은 시골 본당의 고령 신자들의 마음이 모이기 시작했다.
‘가난한 유족의 형편상 빈소를 차릴 수 없으니 본당에서 저녁 미사 후 연도를 하고, 입관 예절과 화장 예절에 참여하는 것으로 장례절차를 마무리합니다.’
고인 선종 후 본당 게시판에 공지된 내용이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였던 고인은 잘 걷지도 못할 만큼의 심각한 당뇨로 오랫동안 투병하다 선종했다. 가족은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40대 아들이 유일했다. 국가 차원에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장례에 대한 기본 지원은 있었지만, 빈소는 마련할 수 없었기에 본당에서 이같은 공지를 낸 것이다.
문제는 고인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안장도 못 하고 화장 후 적당한 곳에 뿌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본당 주임 석근웅 신부는 어머니를 어딘지도 모를 곳에 뿌리면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이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고인을 교구 성요셉공원 묘역에 안장할 것을 제안했다. 본당 사목회 임원 모두 흔쾌히 동의했고, 연령회를 중심으로 장례비용과 미사 봉헌금 지원을 위해 모금을 시작했다. 사연을 접한 본당 신자들은 가족의 일처럼 여기며 고인을 위한 연도에 동참했고, 교중 미사 인원만큼 참여했다. 그날 모인 금액만 180만 원에 달했다. 본당 신자 대부분이 고령의 어르신임을 고려하면 매우 큰돈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소 회장은 연도에 미처 못 나온 신자들도 있으니 주일 미사 때 한 번 더 모금하자고 제안했다. 부족한 금액은 본당이 지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주일까지 모인 금액은 필요한 금액에서 딱 9000원 모자란 480만 1000원이었다. 장례에 필요한 금액이 묘역 안장비 381만 원과 50일 미사 봉헌금 100만 원을 더해 481만 원이었던 것이다. 이후 어르신 한 분은 주일에 돈이 없어 못 냈다며 일당을 벌어 10만 원을 추가로 냈다. 그렇게 십시일반 본당 신자들이 꼭 맞게 마련해 지원한 돈으로 장례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석 신부는 “성경 속 가진 것을 모두 나눈 가난한 과부 이야기와 오병이어의 기적이 바로 이곳에서 일어났다”며 공동체가 이웃을 위해 합심한 사례를 전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구체적인 공동체 사랑의 행위가 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큰돈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가난한 시골에선 힘을 모으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낼 금액입니다. 더구나 대부분 신자들이 다리가 아파 성당에 잘 못 나왔던 고인을 잘 몰랐습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사랑을 실천한 것이지요. 시골 본당 사목자로서 제게도 보물같은 체험이 됐습니다. 성경이 2000년 전 머물러 있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