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파리 올림픽으로 지구촌이 뜨겁다. 선수들의 피땀 눈물이 스민 훈련 과정은 들으면 들을수록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특히 부상을 딛고 메달을 딴 선수들의 눈물과 포효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금 어떤 생각이 스치면서 기뻐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28년만에 배드민턴 금메달을 선사한 안세영 선수의 ‘작심 발언’이 뜨거운 감자다.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원동력은 분노였으며 금메달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요 종합일간지들은 ‘안세영의 셔틀콕… ‘낡은 엘리트체육’ 강타하다’(한겨레 신문), ‘메달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MZ…안세영 ‘낡은 시스템’에 분노했다’(중앙일보), ‘낡은 시스템에 날린 MZ세대의 스매싱’(국민일보)으로 분석하며 한국 배드민턴협회의 구조적 변화를 촉구하는 사설을 내놓기도 했다.
안세영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리 교회의 청년들을 떠올려보았다. 우선 성당에 스스로 찾아오는 청년들은 대부분은 교회 친화적이다. 사제와 본당 사목회에서 요청하는 부분에 귀 기울이고, 본당에서 정해진 규칙은 서로 독려하며 함께 지키려고 한다. 한 번에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대부분 받아들이고 교회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까지 협조적인 것이 놀라울 정도로 요즘 성당의 청년들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교회의 일에 친화적이다.
개인적으로 안세영 선수의 발언이 반가웠던 건 변화를 향한 나비의 날갯짓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협회와 상의를 하지 않았고, 동료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등 여러 이유로 잡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변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한 명이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교회는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 분명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청년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목소리는 힘이 없다. 청년을 주체적인 교회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교회가 청년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변화해야 한다. 모든 사목이 그렇지만 특히 청년에게는 시혜를 베푸는 듯한 지원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당한 교회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함께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청년 신자 수를 늘리는 것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청년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 기쁜 발걸음으로, 교회로 찾아오도록 ‘섬김의 리더십’으로 그들을 품어야 한다.
2027년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교회다. 기록적 폭염에 휴가를 떠나는 것도 버거운 요즘, 세계청년대회 발대식에 참석한 청년들이 명동대성당을 가득 메운 모습을 보니 감사한 마음이 차오른다. 청년과 교회, 변화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지만 청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그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3년 후 전 세계 청년들을 한국 땅에 맞을 때는 청년이 주인공인 신앙 축제가 되어 청년들의 목소리가 더 힘있게 울려 퍼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 _ 박 체칠리아(수원교구 능평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