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만리 유럽에서 온 선교사들은 우리나라에서 무슨 음식을 먹었고, 어떤 평을 남겼을까?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본부장 이승현 신부)가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10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밥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주제로 연 2024년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함께하는 생명살림강좌다. 이날 연단에는 김주영(클라라)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과 ‘음식 인문학자’ 주영하(보니파시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가 섰다.
김 책임연구원은 19~20세기 초 선교사들의 편지와 기록을 통해 과거 우리 음식문화를 조명했다. 박해를 피해 산에 숨어 살던 당시 신자들은 그야말로 조선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유럽에서도 유독 풍요로워 일찍이 ‘일인일닭’(한 사람당 닭 한 마리씩 먹는다는 뜻)이 가능했던 프랑스 출신 선교사들은 이들이 힘겹게 차린 식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초대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는 1899년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한국 음식은 마치 뱃멀미처럼 습관의 문제입니다. 의심쩍은 냄새가 나는데도 훌륭한 맛을 느끼면 익숙해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아주 빨리 한국인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현지 풍습에 적응하는 것을 선교를 잘하기 위한 첫 과정으로 여겼고, 음식문화에도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그 결과 20년 뒤인 1918년 드망즈 주교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제 몸무게가 꽤 나가기 때문에 제가 말을 고르는 기준은 튼튼함입니다. 밥과 소금에 절인 무 식단으로는 이 몸무게를 줄일 수 없어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라고 적었다. 마침내 그가 조선 음식에 잘 적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 음식이 입에 맞는 선교사도 있었다. 페롱 신부는 토장(된장)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토장과 함께 우리에게 없는 차를 대신해주는 숭늉 한 잔을 마시면 소화가 아주 잘 된다”며 “제발 저를 믿고 한 번 먹어보시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와 함께 고추장을 지칭하는 ‘고추 잼’이란 표현과 ‘순무와 돼지고기가 들어간 케이크(만두)에 관한 이야기도 선교사 편지 속 눈길이 가는 내용이다.
이처럼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주영하 교수는 “음식이 곧 문화”라고 강조했다. 또 “음식을 보면 개개인의 취향이 드러난다”며 프랑스 법관 겸 미식평론가 브리야 사바랭(1755~1826)이 남긴 말을 인용했다. ‘당신이 먹은 음식을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주 교수는 한국인에게 ‘밥’이 지니는 의미를 예로 들었다. 조선 시대 이정구(1564~1635)라는 인물의 일화를 언급하며 “사신으로 중국 북경에 가서 온갖 음식을 대접받았음에도 밥을 주지 않아 결국 자리를 나오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우리에게 주식인 밥 자체가 그만큼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