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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성인들께 말씀 좀 잘 드려줘!(송영은 가타리나,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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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프랑스 주재원 임기가 끝나갈 즈음 나는 마지막 여행지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아시시를 택했다. 진작부터 아시시에 가지 않은 것은 남편의 이탈리아 출장지에서 가기에는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이러저러한 세상사에 마음이 복잡하던 터라 미간을 찌푸린 채 성지에 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3년이라는 시간의 종착점이 시야에 들어오고 나서야 아시시에 가고픈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남편의 제노바 숙소에 즉석밥과 라면, 반찬 통조림을 잔뜩 내려놓고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아시시로 가는 도중 만나는 피사·피렌체·아레초에서 하루 이틀을 쉬어가며 이제는 자주 마주하지 못할 풍광들에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드디어 아시시 기차역, 나는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프란치스코 대성전으로 향했다. 성인의 무덤이 있는 지하경당에서 기도를 바치고, 남편의 생미사를 넣은 후 한창 일하고 있을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남편은 “고마워, 잘 좀 말씀드려줘”란다.

3년간의 타지생활은 생각보다 바빴고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좌충우돌하며 배운 것은 우리가 항상 모든 일을 해결할 수도 없을뿐더러,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안절부절하며 짜증만 늘어가는 내 마음을 나도 어찌할 수 없을 때, 가장 큰 위안과 힘이 된 것은 “내가 여기서 기도할게”라는 지인들의 말이었다. 아무리 늘어놔도 끝날 줄 모르는 불만이 불안으로 이어질 때,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은 팽팽하게 당겨진 마음의 신경을 느슨하게 해주었다.

남편은 결혼할 때 홀로 성당에 다니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주말에는 미사보다 늦잠이 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에게 ‘기도 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기도 덕분인지 오늘은 바쁜 날인데도 괜찮았어”라고 했다가, 어떤 날은 “요즘은 왜 이렇게 힘들지? 기도 좀 더해줘”라고도 했다가, 한국에서 누가 생미사라도 넣어주셨다고 하면 “그래?”하며 반가운 미소를 짓기도 했다.

아시시에 머무는 3일간, 순례자나 관광객이 많지 않은 기간이어서 인파나 소음 걱정 없이 이번엔 내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초를 켜고, 성인들께 그분들을 기억해 주십사 부탁드릴 수 있었다. 마지막 날, 다시 찾은 프란치스코 대성전에서부터 성클라라 성당을 거쳐 산 다미아노 수도원을 지나 리보토르토 성지, 그리고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전까지 걷고 또 걷기를 계속하고 있자니, 머리와 가슴에 얹혀있던 모래주머니가 점점 아래로 내려간 듯했다.

다시 아시시 기차역·휴게소에서 아픈 다리를 쉬게 하면서 따듯한 커피 한잔에 피스타치오 크림 가득한 빵을 한 입 베어 물자, ‘아, 살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카페인 한 모금과 달달한 간식 한입에 이렇게 마음이 트이다니! 남편의 기도 투정 덕에 나는 성인들의 발걸음을 따라다니며 이렇게 가벼워졌는데, 이제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내가 남편에게 기도 투정을 부릴 차례인가 보다.





송영은 가타리나 /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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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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