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는 반공영화의 전성기였습니다. ‘증언’ (1970), ‘낙동강은 흐르는가?’ (1976), ‘장마’ (1979) 등 반공이 국시(國是)였던 시절, 영화관은 반공으로 물들었습니다. 그중에는 만화 영화 ‘똘이장군’(1978~79)이 있습니다. 영화는 붉은 수령을 돼지로, 부하들은 여우와 늑대로 그렸습니다. 공산당 수령 때문에 고난을 겪고 있는 인민을 위해 똘이장군은 친구들과 함께 제3 땅굴을 파 내려가던 북괴를 물리칩니다. 똘이장군이 주먹으로 붉은 돼지와 여우들을 혼내주자 영화관의 아이들은 박수와 함성을 질렀다고 하지요. 통쾌함으로 들뜬 아이들 덕분에 영화는 흥행이 되고, 2편 ‘간첩 잡는 똘이장군’도 제작됩니다.
영화관을 나선 아이들은 반공 투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피 흘리는 공산당이 사람을 잡아먹는 그림을 그려서 학교 복도와 교실 곳곳에 전시했습니다. 학교 반공 웅변대회에서 아이들은 ‘때려잡자 공산당’을 목 놓아 외쳤습니다.
여러 학교에 세워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이승복 어린이의 동상은 아이들의 우상이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겠다고 어른들이 겁을 주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아이들의 마음에는 북에 대한 증오와 공포, 무엇보다, ‘반공’을 위해 싸우는 ‘똘이장군’이 살게 됩니다.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이 시작된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 암약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암약하던 이들이 들고일어나 북한에 협력할 거라고도 했습니다. 야당은 “빨갱이 소탕 작전이라도 벌이겠다는 뜻인가”라며 반발했습니다.
최근 윤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며 똘이장군이 생각났습니다. 이미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북한을 우월하게 넘어선 선진국 대한민국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때 그 시절의 똘이장군이 살고 있습니다. 마음속 똘이장군을 불러내면 언제 어디서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안보에 대한 공포와 불안, 전쟁준비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공동체의 단합도 마음속 똘이장군과 함께 부활합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공산 전체주의 세력” “적대적 반국가세력”을 말하는 배경에 색깔론이 있다는 지적은 틀려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 황당한 건, 윤 대통령이 말한 국론 분열 세력이 다름 아닌 대통령 본인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반국가세력을 말하면서 안보 불안과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는 이가 바로 대통령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근대화 시기로 미화하는 뉴라이트 학자들이 활개를 치고, 사도 광산을 비롯한 대일 굴욕 외교로 광복절 경축식마저 갈라졌습니다. 지금 국론 분열을 만드는 반국가 세력은 누구인지 하느님 앞에서 성찰해 보길 바랍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간첩 잡는 똘이장군 >입니다. 우리 마음속 똘이장군이 반공의 투사가 아니라 추억 속 만화로만 기억되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