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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어려운 사건은 나쁜 법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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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법과 관련한 속담 중에 ‘어려운 사건은 나쁜 법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교황청이 최근 「죽음에 관한 작은 사전」이라는 작은 용어집을 발행했는데, 이 속담이 떠올랐다. 이 용어집에서 교황청은 17년 전 결정한 만성질환자에 대한 인위적인 영양과 수분 공급 중단에 대한 입장을 작지 않게 바꿨기 때문이다.


교황청립 생명학술원이 발행한 새 용어집은 법적 효력을 갖거나 새로운 가르침을 담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2007년 미국의 테리 스키아보 사건으로 형성된 교황청의 입장에서 벗어났다. 이 용어집은 아직 이탈리아어판만 발행됐고 특별한 발행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 못할 수 있겠지만, 스키아보 사건은 아마도 생명의 종식에 관해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있었던 가장 유명한 논란이었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정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는데,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의 동생 젭 부시가 주지사로 있던 플로리다주에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당시 플로리다주는 주요 경합주였다.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자면, 1990년 테리 스키아보라는 여성이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스버그 자택에서 심장마비가 와 심각한 뇌 손상을 입고 결국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이후 그를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고, 1998년 테리의 남편은 급식관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테리의 부모는 사위의 결정에 반발했다. 부모는 신심 깊은 가톨릭신자인 테리가 교회의 가르침을 거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자로부터 급식관을 제거하는 것은 안락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테리의 남편과 부모의 대립은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고 정치적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7년여의 법정 다툼 끝에 급식관이 제거된 테리는 2005년 3월 31일 생을 마쳤다. 이 다툼은 가톨릭교회 안에서 폭넓고 열정적인 운동을 일으켰는데, 교회의 지도부보다는 활발한 프로라이프 활동가들의 역할이 컸다.


당시 스키아보 사건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 안에서 갑자기 큰 관심을 받았는데, 테리의 죽음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임종 시기가 겹쳤기 때문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그해 4월 9일 선종했는데, 선종 전 교황은 급식관을 통해 영양과 수분을 공급받았다. 급식관으로 영양과 수분을 공급받은 교황은 테리의 남편을 반박하는 것으로 비쳤다.


스키아보 사건 후, 미국 주교단은 당시 신앙교리성(현 신앙교리부)에 공개질의서를 보냈는데, 신앙교리성은 비록 환자가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더라고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지속적인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음식과 물을 공급하는 것이 보통의 적절한 조치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새 용어집도 주지하듯이, 2007년 신앙교리성의 답변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인위적인 영양과 수분 공급은 “환자가 수분과 영양을 최종적으로 섭취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환자가 공급받은 음식과 물을 흡수할 수 없다면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2007년 신앙교리성의 답변은 대부분의 경우 인위적인 영양과 수분 공급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를 담고 있다.


2005년 7월 테리가 죽은 직후 미국 주교회의 신앙위원회가 교황청에 공개로 질의했을 때, 당시 위원장은 샌프란치스코대교구장 윌리엄 레바다 추기경이었다. 그리고 2년 뒤, 신앙교리성의 답변이 발표됐을 때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은 레바다 추기경이었다. 레바다 추기경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을 레바다 추기경 자신이 한 셈이다.


당시 미국교회는 스키아보 사건으로 유화 정책 아니면 투쟁 두 가지 갈림길에 있었다. 안락사와 ‘죽을 의무’로 향하는 비탈길에 첫발을 디디느냐 아니면 환자의 상태가 어떻든 모든 인간에 내재된 존엄과 인간 생명 보호를 위해 선을 긋느냐의 선택이었다.


17년이 지난 오늘날, 임상적 그리고 사목적 경험이 쌓인 지금은 이 문제가 양단간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사건에 따라 판단의 여지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마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 특히 미디어와 정치적 폭풍 없이는 더 어려워졌다.


이런 의미에서, 교황청이 미묘하지만 인위적인 영양과 수분 공급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은 교황청이 왜 오랫동안 생각하며 결정을 미루는지 다시금 깨닫는 기회가 됐다. 빨리 결정을 내리면 동등하고 반대되는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특히 그 결정이 지혜의 전망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순간의 압박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면 더욱 위험하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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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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