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 정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법안을 채택한 데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려를 표명했다. 정치적 선택에 따라 종교의 자유가 억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8월 2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주일 삼종기도 후 연설에서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속한 교회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최근 우크라이나가 채택한 법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기도하는 것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 교회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이어 교황은 “사람은 기도 때문에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면서 “어떤 교회도 직간접적으로 폐지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의회는 8월 20일 러시아 정교회 모스크바총대교구와 관계를 끊을 것 등을 명시한 ‘러시아 정교회 연계 활동 금지법’을 의결했다. 해당 법안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24일 법안에 서명하면서 공식 발효됐다. 러시아 정교회와 연계된 교구와 본당, 수도원 등은 9개월 내로 모스크바총대교구와의 관계를 끊고 우크라이나 정교회로 소속을 변경해야 한다는 게 법안의 주요 내용이다.
이미 우크라니아 정교회는 러시아의 침략 욕망이 직접 드러난 2019년부터 러시아 정교회와의 결별을 준비해 왔다. 2019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콘스탄티노플 정교회의 동의를 받아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에는 공식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와의 유대 관계 또한 끊었다. 이를 위한 노력의 하나로 지난해에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율리우스력에 따른 1월 7일이 아니라 그레고리력에 따른 12월 25일로 바꿔 기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당수 교구·본당이 모스크바총대교구와 연계된 상태에서, 일부 공동체와 성직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실제로 일부 정교회 성당에서 러시아 선전물과 외국인 혐오 서적 등이 압수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교회 연계 금지법’에 대한 평가는 각자 입장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당장 당사자인 모스크바 총대교구청은 교황의 연설 하루 전인 24일 성명을 내고 “해당 법은 종교 자유에 역행한다”면서 “이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성명에서 “러시아 정교회는 침략을 정당화하는 등 보편적 도덕 규범마저 짓밟고 있는 상황”이라며 “신자의 기도를 막는 것이 아니라 종교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내 정교회 전문가인 피터 앤더슨 변호사는 미국 가톨릭계 언론 CRUX와의 인터뷰에서 법안을 제안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마음에는 공감하나, 인권 침해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앤더슨 변호사는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의 대응은 다소 극단적”이라며 “법이 기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교회를 선택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