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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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을 바라보며

[월간 꿈 CUM] 꿈CUM 수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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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한 달포 집을 비울 일이 있어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화초였습니다. 궁리 끝에 일단 화분들을 밖으로 끌어내기로 했습니다. 관음죽, 소철, 문주란, 군자란 등 여남은 개의 화분을 단지 내 화단으로 끌어내려 경비 아저씨에게 부탁하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즉시 화분부터 살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모두들 어찌나 잘 자라 있는지, 짙푸른 빛깔에 자르르 윤기까지 도는 잎사귀며 10센티도 넘게 훌쩍 커버린 키. 그들은 더할 수 없이 건강해 보이는 모습으로 저를 반겼습니다. ‘보세요. 잘 자랐지요? 우린 넓은 세상에 나와 잘 살았답니다.’

모두들 한 목소리로 자랑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하도 좋아 몇 번이고 그 잎사귀들을 쓰다듬으면서 경비 아저씨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근데 그분들이 들려준 대답.

“햇볕이 좋아서 그런 거지 우리가 뭐 한 것 있나요? 가끔 물이나 좀 준 것밖엔 .”

그렇습니다. 햇볕이 보약이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 안에서 간접으로 쐬는 햇볕. 그것도 아침 시간 잠깐 들었다가 사라지는 햇볕. 그들은 노상 햇볕을 그리며 대엿새 만에 한 번씩 주는 물만 받아먹고 근근이 살았던 겁니다. 거기다 비하면 바깥마당이야말로 최적의 공간이었겠지요. 종일 내리 비치는 햇빛을 실컷 쐬고,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오가는 사람들도 신나게 구경하고, 찜통더위에 젖은 몸, 간간이 퍼붓는 소나기에 샤워도 시원히 하면서 정말 사는 것처럼 살았겠지요.
 

무엇보다 햇볕은 나무들에게 물만큼이나 필요한 양식일 것입니다. 이른 봄 양지바른 쪽의 목련이 먼저 피듯이, 늦가을 양지 바른쪽의 나뭇잎이 더 빨리 더 곱게 단풍 들듯이, 그들에게 햇볕이야말로 더없는 자양분이었을 것입니다.

햇볕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 햇볕이 인간세계에선 무엇에 비유될 수 있을까요. 그건 응당 부모의 사랑일 것입니다. 옛말에, 제 자식은 제 어미가 키워야 한다, 할머니가 아무리 잘해줘도 제 어미 사랑만 같겠느냐, 제 부모는 그냥 옆에만 있어도 양의 기운이 전달된다, 새끼들은 제 어미 냄새만 맡아도 마음이 안정된다… 등등 많은 말들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엄마 대신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해거름만 되면 쓸쓸해하는 모습을 보았는지요. 낮엔 이런저런 놀이로 잊고 지내다가 날이 저물면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져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보았는지요.

화분도 그렇습니다. 제 딴엔 정성을 들인다고 물도 꼬박꼬박 주고, 진딧물도 잡아 주고, 분갈이도 해 줬건만 자연 그대로만은 못했던 것입니다. 잠시나마 자연으로 돌아가 햇볕의 사랑을 받고 훨씬 건강한 모습으로 자란 화초들이 제 마음을 뿌듯하게 합니다.

문득 요즘 아이들에게 생각이 멈춥니다. 최근 들어 아이들은 제 부모 밑에서 자라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여자들이 대부분 일자리를 갖게 되어 주부의 자리, 엄마의 자리를 비워버렸고, 이혼으로 인해 편부모 가정, 조손 가정도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영아원에서 자라는 아이, 새엄마의 손에서 자라는 아이, 가정부의 손에서 자라는 아이,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는 아이….

어차피 부모의 손에서만 자녀를 기를 수 없게 된 이 시대에, 누가 되었건 그들이 책임을 느끼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사랑과 정성이 담긴 육아는 아이를 건전하게 성장시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느 누구의 사랑이 되었건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어린이는 우선 정서가 안정되기 마련이고, 정서가 안정되면 사물을 긍정적으로 대하기 마련입니다. 사사건건 부정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그 자신도 피곤하고 옆 사람도 피곤하게 합니다. 불신은 불신을 낳아 꼬리를 물게 되니 대인관계가 좋을 수 없지요. 그 경우 대부분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를 받고 자란 때문임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잘 자란 화분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절로 기도가 나왔습니다.

“주님, 어린이를 돌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디 당신의 햇볕 사랑을 나누어 주십시오.”


글 _ 안 영 (실비아, 소설가)
1940년 전남 광양시 진월면에서 출생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만남, 그 신비」,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소설집 「둘만의 이야기」 「치마폭에 꿈을」 수필집 「나의 기쁨, 나의 희망」 동화 「배꽃마을에서 온 송이」 등을 펴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가톨릭문인회 회원이다. 한국문학상, 펜문학상, 월간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중앙대문학상, 제1회 자랑스러운 광양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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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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