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동쪽과 서쪽 바다는 각각 ‘사자’와 ‘범’(호랑이)이 지켰다는 말이 있다. 좌청룡 우백호도 아니고, 웬 사자와 범이 그것도 바다에 있느냐고? 의아해할 필요 없다. 바로 강치(바다사자)와 물범(바다표범)을 가리킨 것이기 때문이다. 강치는 동해, 물범은 서해가 주요 활동 무대다.
다만 ‘지킨다’가 아니고 ‘지켰다’인 이유는 개체 수가 크게 줄거나 멸종해버린 까닭이다. 울릉도와 독도에 서식하던 강치는 20세기 초만 해도 3만 마리에 달했다. 그러나 1904년 일본이 포획과 수렵을 시작하면서 생존이 크게 위협받았다. 8년 만에 30 이하인 8500마리로 감소, 1930년에는 790마리, 1940년 227마리로 줄었다. 그리고 1974년을 끝으로 더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인간의 남획으로 영영 볼 수 없게 된 도도새와 같은 운명이다.
물범, 정확히는 점박이물범은 아직 생존은 하고 있으니 강치보단 조금 나은 처지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불법 포획과 기후위기 등으로 개체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1940년 8000마리에서 지금은 1500마리가 됐다. 인간이 욕심을 제어하지 않으면 언제든 멸종 조짐이 보인다.
현재 백령도에는 물범 약 300마리가 서식한다고 한다. 이번 출장에서 운 좋게도 물범을 관찰할 수 있었다. 멀리서는 그냥 하얀 점처럼 보였는데, 망원경에 눈을 대니 온전한 형태가 들어왔다. 바위에 물범 여러 마리가 태평하게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통통한 몸과 앙증맞은 앞발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물속에서 헤엄치다 머리를 빼꼼 내미는 녀석도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장면을 실제로 보니 탄성이 나왔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웠다. 물범이 강치와 같은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중국으로 돌아간 판다 반만큼만 쏟으면 어떨까. 서쪽 바다에서 범마저 사라지면 한반도 바다는 누가 지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