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비보를 많이 접한 한 주였다. 슬픔이 몰아쳤지만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돌아가신 분들과 내가 직접적인 연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받은 부고장에 나는 결국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기수짱?. 기수 아저씨가 돌아가신 것이다.
아저씨는 작년 여름, 내가 요양병원에 잠시 머물렀을 때 알게 된 분이다. 당시 나는 죽음의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랜 투병에 정신적으로도 매우 지쳐있었고, 암세포들이 급격하게 온몸으로 퍼지면서 엄청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아주 독한 항암 약이 남았다고 했지만 버틸 자신이 없었다. 이제 연명을 위한 치료는 멈춰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간 요양병원에서 아저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곳에 계신 대부분 환자는 나처럼 4기 암 판정을 받은 분들이었다. 하지만 나만큼이나 통증을 호소하시는 분은 없어 보였다. 통증이 심했던 나는 흘러나오는 신음을 막기 위해 이불로 입을 틀어막고 식은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며 매일을 버텼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에게서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긍정의 기운만 얻어도 살까 말까 하는데, 내가 그들과 같은 병실을 쓰는 것이 그들에게 부정적인 기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다른 병실로 옮기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다들 같은 처지에 놓여있으니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다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와중에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품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원성에 못 이겨 나는 결국 텅 비어있던 4인실에 홀로 덩그러니 옮겨졌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환자 사이에서 왕따 비슷한 것까지 당하고 나니 정말 마음 기댈 곳 없었다. 그때 다가와 준 분이 기수짱이다. 기수짱은 6개월이라는 여명을 판정받고 요양병원에 들어와 있었는데, 그곳에서 생활하며 1년이 훌쩍 넘도록 건강을 회복하고 살아가고 있는 병원 내의 유명인사,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아저씨는 딸처럼 나를 챙겨주셨다. 잠들기 전에 나를 찾아와 “이렇게 큰 병실에 수정이 혼자 두고 가려니 마음이 너무 안 좋다”며 외롭고 힘들면 언제라도 아저씨를 부르라고 당부하셨고, 아침에도 제일 먼저 병실 문을 두드려 밝은 인사를 건네주셨다. 다들 자신의 여명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보려 안절부절못하는데, 아저씨만 여유가 넘쳤다. 아저씨에게는 신기한 빛이 났다.
그런 아저씨의 부고 소식에 나는 내 가족을 잃은 양 목 놓아 울었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내가 왜 울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무조건 천국에 가셨을 텐데, 내가 이토록 슬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나도 남은 삶을 예쁘게 잘 살아내어서 꼭 아저씨가 계신 천국으로 곧장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보고 싶은 기수짱. 아저씨한테서 나던 그 빛은 아마도 영원한 생명의 빛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