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즉위 이후 가장 긴 여정의 아시아·오세아니아 4개국 사목방문에 나섰다. 9월 2일 로마에서 비행기로 출발한 교황은 첫 방문지인 인도네시아에 3일 도착해 6일까지 머문 뒤, 6~9일 파푸아뉴기니, 9~11일 동티모르, 마지막으로 11~13일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87세 고령인 교황이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로마에서 인도네시아까지 13시간 동안의 비행을 포함해 총 이동거리가 3만km가 넘는 여정을 소화한 것은 ‘변방’(peripheries)에 있는 가톨릭신자들에 대한 목자로서의 친밀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교황의 아시아·오세아니아 4개국 사목방문 여정을 살펴본다.
■ 첫 방문지 인도네시아
교황은 2일 인도네시아로 출발해 3일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교황은 13시간의 비행과 시차에도 예수회 난민센터로부터 지원을 받는 이주민과 난민, 도미니코 수녀회가 돌보는 고아들, 또한 성 에지디오공동체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약자와 병자들을 찾아가 위로를 전했다. 이들과의 만남은 주인도네시아 교황대사관에서 이뤄졌으며, 교황은 인도네시아 방문 동안 주인도네시아 교황대사관에서 생활했다.
교황은 인도네시아 도착 다음날인 4일 자카르타 성모승천대성당에서 주교, 사제, 부제, 수도자, 신학생, 교리교사 등과 만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쁨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3만km 넘는 긴 여정 소화
가난한 이들 먼저 찾아 위로
각국 공동체와 함께 미사 봉헌
이스티크랄 모스크 방문해
종교 자유·생태계 보전 다짐
교황은 5일 오전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스티크랄 모스크에서 종교간 대화 모임을 마련했다. 이스티크랄 모스크에 방문한 교황은 모스크와 자카르타대성당을 지하통로로 연결하는 ‘우정의 터널’로 안내돼 이스티크랄 모스크 이맘과 공동으로 ‘이스티크랄 선언’(The Istiqlal Declaration)에 서명했다. 이 선언은 가톨릭과 이슬람 두 종교 구성원들이 폭력의 위협을 받는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창조질서를 보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황은 종교간 대화 모임에서 “모든 종교의 신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종교 신자들 역시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5일 오후에는 겔로라 붕 카르노 경기장에서 미사를 주례했다. 인도네시아 방문 중 유일한 미사였으며, 경기장에는 수만 명의 신자들이 운집했다.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가장 작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먼 그리스도인 공동체도 복음을 공유하고 복음대로 살도록 부름받았다”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삶의 모습으로 복음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비록 우리는 작은 존재일지라도 우리는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꿈꾸고 있고, 실제 인도네시아 정부와 일상의 삶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미사를 주례하기에 앞서 교황 전용 차량을 타고 경기장 주변을 돌며 신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 두 번째 방문지 파푸아뉴기니
교황은 6일 인도네시아를 출발해 두 번째 방문지인 파푸아뉴기니로 떠났다. 교황이 포트모레즈비 잭슨스 국제공항에 내린 것은 해가 지고 한 시간이 지난 뒤였지만 교황을 직접 보려는 인파들이 공항 주변에 줄을 지어 있었다.
교황은 7일 정부청사에서 밥 다대 총독 등 정부 고위관리들과 만나며 파푸아뉴기니에서의 일정을 시작했다. 교황은 같은 날 오후 교회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기술학교를 방문해 파푸아뉴기니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과 그들을 돌보는 가톨릭신자들, 주교와 사제, 수도자, 신학생들을 만났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살고 공유하기 위한 열정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기쁨을 찾고 타인에게 봉사하는 문제”라며 “무엇보다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은 파푸아뉴기니에서도 가장 변방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교황은 ‘변방’의 의미에 대해 “가장 필수적인 것조차 결여돼 있는 곳, 도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버려진 지역, 가장 외진 농촌”이라고 부연했다.
교황은 8일 오전 포트모레즈비 존 가이즈 경 기념 경기장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한 뒤 9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청년 1만 명과 만나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파푸아뉴기니 전체 인구 820만 명 가운데 25세 미만이 약 60나 될 정도로 청년 인구 비중이 높다.
교황은 미리 준비해 간 원고를 그대로 읽지 않고 “젊은이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듯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필요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며 “사람들은 공통의 언어, 즉 사랑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은 경우에 따라 가정을 망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랑 안에서 결합될 때, 청년들은 파푸아뉴기니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면서 “내가 희망하는 것은 청년 여러분들이 사랑의 언어를 배워서 여러분의 조국을 바꾸고, 여러분 자신을 성장시키고, 미래로 향하는 길을 열어 가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교황이 8일 포트모레즈비에서 바니모로 이동하는 비행기에서 숲과 산,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태계 보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교황은 “우리는 자연의 색과 소리, 향기 그리고 생명을 낳는 자연의 위대한 장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며 “이 모든 것들이 에덴동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폭력과 착취, 알코올 중독 같은 파괴적인 습관을 끊어내는 것도 의미한다”면서 “파푸아뉴기니의 많은 형제자매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앗아가는 것 역시 악행”이라고 말했다.
■ 동티모르와 싱가포르 방문
교황은 세 번째 방문지인 동티모르 딜리에 9일 도착해 대통령궁 야외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한 뒤 정부 관계자와 외교사절 등과 대통령궁에서 만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10일에는 이르마스 알마 학교에 출석하는 장애 아동들과 만난 뒤 원죄 없는 잉태 대성당에서 동티모르 주교단과 사제단, 수도자들, 신학생들과 만남을 이어갔다. 이날 오후에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딜리 인근 타시톨루 습지대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11일에는 센트루 지 콩벤송이스에서 동티모르 청년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교황은 9월 11일 오후 마지막 방문지인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피정센터에서 예수회 회원들을 만난다. 9월 12일 오후, 교황은 싱가포르 스포츠허브 국립경기장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13일 성녀 테레사의 집에서 노인과 병자들을 방문하고 가톨릭 주니어 칼리지에서 젊은이들과 종교 간 대화를 진행하는 것으로 아시아·오세아니아 4개국 방문 여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