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 조선을 관통하다」(김영사, 2022)를 출간하고 큰 공허감이 몰려왔다. 태풍이 쓸고 간 폐허에 혼자 선 듯 허망했다. 마음을 달래려고 황사영 백서의 원본 필사를 시작했다. 가로 62센티미터, 세로 38센티미터 크기의 명주천에 깨알 같이 쓴 글자가 무려 1만3384자였다. 원본하고 똑같은 크기에 동일한 행배열로 베껴 썼다. 불경 사경(寫經)에 쓰는 극세필을 구해 한 달 넘게 걸려 어렵게 완성했다.
인상을 찡그려 가며 베껴 쓰는 사이에 배론 토굴 속에서 조선 교회를 구해야 한다는 간절한 일념으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황사영의 마음이 내 안에 새겨졌다. 앞서 책을 쓸 때 머리로 읽고 정보로 찾아 읽던 그 글이 아니었다. 순교자의 비명 소리와 회한에 찬 탄식, 피눈물의 간구가 응축된 장대한 서사가 메아리쳤다. 그 뒤 1811년 신미년 백서를 비롯해 북경으로 보내진 각종 편지의 원본 사진을 원래 크기대로 전사하는 작업을 차례로 진행해서 모두 마쳤다.
지난 7월 말 전남 강진에 갔다가 숙소에 딸린 작은 전시장에서 촛불을 그린 소폭의 그림을 보았다. 양초의 몸체 부분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아 손전화로 찍어 확대해 보고는 놀라 기함을 했다. 가로와 세로 3센티미터 가량의 정사각형 안에 반야심경 전문 270자를 붓으로 써놓았다. 1제곱센티미터 안에 30여자씩 쓴 크기였다.
상경 후 작가를 수소문해 찾아가 만났다. 김재현 선생은 전남 지역에서 퇴임한 미술 교사였다. 낙도의 섬 학교에서 밤중에 숙직을 서고 있으면 적막하고 무서워서 반야심경을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그의 기록은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1.9센티미터 사각형 안에 반야심경을 모두 써넣는 것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를 만나 사용하는 붓을 보고, 실제 작품을 더 보고 나자 나도 다시 작은 글씨를 써볼 생각이 났다. 그의 글씨는 내 황사영 백서 글씨 크기의 절반 보다 훨씬 작았다. 그날부터 작은 글씨에 다시 도전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기하게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포기했던 크기의 글씨가 문득 써지는 것이 아닌가?
며칠 전 출판사 편집자와 얘기하다가 그 글씨 사진을 보여 주자 눈이 동그래지더니 독일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연필로 쓴 작은 글씨」(문학동네, 2023)란 책을 귀띔해 준다. 책을 구해 보니 이건 또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다시 그 글씨에 빠져 연필 아닌 붓으로 같은 크기의 글씨를 한동안 썼다. 뒤이어 폴란드 화가 로만 오팔카가 깨알 같은 글씨로 그린 그림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8월 한 달 동안 폭풍우 같이 미세 글씨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었다. 작은 조각 종이에 극세필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글씨를 쓰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고물고물 이어진 글자들은 일종의 물결 같다. 또박또박 써나가는 동안 순수한 기쁨이 내 안에 차오른다.
나이를 먹어 가니 차곡차곡 쌓아 가는 것들이 좋다. 한꺼번에 말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이루어가는 것들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나는 좀 더 천천히 가야겠다. 더 목적 없이 서성거리고, 더 느리게 걷고, 더 많이 눈 감고, 더 가만히 음미해야겠다. 한 글자 한 글자씩 써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넓은 지면을 무늬처럼 꽉 채우는 깨알 글씨처럼.
글 _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