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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용산 신학교 지키다 순교한 세 사제 기념비 제막

‘하느님의 종’ 이재현·백남창·정진구 신부 기념비, 예수성심신학교 성당 앞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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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백남창·정진구 신부 기념비 제막식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6·25전쟁 때 신학교를 지키던 세 명의 사제가 북한군에 납치된 자리에 11일 기념비가 세워졌다. 1950년 9월 17일 ‘하느님의 종’ 이재현(요셉)·백남창(아가피토)·정진구(마티아) 신부가 북한군에 끌려가 행방불명된 지 74년 만이다. 건립 비용은 스승의 피랍 현장을 목격하고 생생히 기억하는 당시 소신학교 4학년 김항식(안드레아, 92)씨가 전담했다.

이날 기념비 제막식은 서울 원효로 성심여자중·고등학교 내 예수성심신학교 성당(피랍 당시 용산소신학교 성당) 앞에서 거행됐다. 성심수녀회 한화관구장 최혜영 수녀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송란희(가밀라) 학술이사 등 기념비 제작과 설치에 힘쓴 이들이 참여했다. 건립을 제안한 김항식씨는 건강상 이유로 불참했다. 대신 그가 신부들이 납치되던 상황을 증언한 내용 일부가 제2독서로 낭독됐다.

제막식을 주례한 황응천(서울대교구 용산본당 주임) 신부는 “세 분의 신부님이 지켜내신 것은 정말 커다란 신앙”이라며 “우리 순교 역사가 여전히 이 땅에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피랍 당시 이재현·백남창 신부는 소신학교(성신중학교) 교장과 교사였고, 동성중학교 교사인 정진구 신부는 소신학교로 피신한 상태였다. “양 떼를 두고 피신할 수 없다”며 꿋꿋이 학교를 지키던 이들은 북한군에 의해 도서실에 감금됐다가 어디론가 연행됐다.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정황상 총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세 신부는 시복 대상자인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에 포함돼 ‘하느님의 종’이 됐다.
 
서울 원효로 성심여자중·고등학교 내 예수성심성당(옛 용산 소신학교 성당) 앞에 설치된 이재현·백남창·정진구 신부 기념비.

‘근·현대 신앙의 증인’이라는 머리말을 단 기념비에는 장소 설명과 세 신부의 생몰년 등이 수록됐다. 하단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하면 주교회의가 작성한 약전을 읽을 수 있다. 기증자 김항식씨에 관한 정보도 기념비 한편에 기록됐다. 그가 황해도 해주본당 출신으로 1947년 9월 소신학교에 입학했으며, 세 신부를 ‘양들을 지키는 목자’로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기념비 설립을 발의했다는 내용이다.
 

기념비 설립 과정에는 가톨릭평화신문의 숨은 노력도 있었다. 김항식씨와 옛 신학교 건물을 관리하는 성심수녀회 사이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앞서 김씨는 지난 5월 “도움을 받아 모은 돈 500만 원으로 세 신부님 기념비를 세우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하며 자신이 그린 피랍 당시 신학교 약도와 회고록을 본지에 보내왔다. 본지는 성심수녀회에 이같은 김씨의 뜻을 전달하며 기념비 설치 가능 여부를 문의했고, 수녀회는 내부 회의를 거쳐 김씨와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함께 기념비를 제작하게 됐다.

김씨는 11일 본지에 보낸 메시지에서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 촌로의 간절한 소망이었다”며 “꿈이 이뤄져 감개무량하다”고 밝혔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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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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