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개무량하네요.”
74년 동안 애타게 바랐던 꿈을 마침내 이룬 소회는 짧았다. 11일 옛 용산 신학교 성당(예수성심성당) 앞에 세워진 기념비 사진을 모바일 메신저로 보내고 받은 답장이다. 기념비가 있는 곳은 바로 1950년 9월 17일 신학교를 지키던 이재현·백남창·정진구 신부가 북한군에게 납치된 자리. 소신학교 4학년 때 스승의 피랍을 목격한 1932년생 김항식(안드레아)씨는 전 재산 500만 원을 쾌척해 기념비를 세웠다. ''양 떼를 지키는 목자’로 끝까지 신학교를 지킨 세 신부를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김항식씨를 처음 만난 때는 2년 전, 봉사 차량을 타고 몇 년 만에 나들이 나온 ‘평화의 모후원’ 요양원 어르신들을 동행 취재할 적이었다. 아흔 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을 하늘만큼 맑은 웃음꽃을 피우던 이가 바로 그였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떠올라 손자처럼 살갑게 다가가 말동무가 돼드렸다. 짧게나마 정다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면서 아쉬운 마음에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찾아 뵙겠다’고도 약속했지만, 고백하건대 먼저 연락 한 번 드린 적 없었다. 스승 이재현 신부에 관한 기사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들어준 게 다였다.
지난 5월 죄송한 마음도, 그날의 추억도 흐릿해질 즈음, 김씨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스승 신부님들 위해 작은 기념비를 세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니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면서 74년 전 납치 현장을 그린 약도를 보내왔는데, 어제 있던 일처럼 상세히 묘사해 깜짝 놀랐다. 서둘러 알아보기 시작했고 마침내 성심수녀회와 다리를 놓는 데 성공했다. 기념비 제막식에 초대받은 것도 그 공로 덕분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김씨에게 답장을 보냈다. “처음에 제게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일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바로 역시 짧은 답이 돌아왔다. “금구(요한 크리소스토모)님이 좋아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