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방주의 창’에 올리는 글이 이주민과 난민들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졌단 사실을 깨달았다. 큰 부담이었다. 이주민 특성화 본당에 오게 되어 자주 접하게 되는 일들을 글로 옮겨 알린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을 ‘활동가’로 이야기하기에는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도 알려야 할 일도, 알리고 싶은 일도 너무나 많은 것도 사실이기에 이곳에서 내가 배우게 된 것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달 원고를 준비하면서 휴가를 떠나게 됐다. 2년 만의 휴가는 당연히 달콤한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그곳의 공공도서관에서 방해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서관 기념품 가게에서 우연히 책 하나를 만나게 됐다. 작가 이름이 너무나 특이했기 때문이었다.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 책 한가운데에 박혀있는 ‘Park Hong’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자마자 책을 집어 들게 됐고, 몇 쪽 읽어 보다 ‘아, 이거 사야겠다!’ 싶었다.
이 책의 제목은 「Minor Feelings」. 대중적이지 않은 감정을 적은 것일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소수자(minor)로서의 자신의 감정을 적어 놓은 글이었다. 등단 시인이자 대학교수라는 타이틀만 보면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데, 2세대 한인으로서 자기 부모와 함께 겪어야 했던 온갖 어려움들, 특히 우리에게도 각인돼 있는 LA 폭동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느꼈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 차별 섞인 눈빛들을 만날 때의 감정을 표현한 부분은 내게 묘한 기시감을 주었다. ‘어, 이거 어디서 본 건데?’
차별 섞인 눈빛들을 본 곳은 다름 아닌 내가 살고 있는 동두천의 길거리였다. 미군 부대 근처 보산역에는 ‘외국인 관광특구’가 설치돼 미군과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술집과 클럽이 밀집돼 있다. 이곳 술집과 클럽 입구에는 ‘내국인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크게 붙어 있고 종업원들 역시 이주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주민 종업원들을 바라보는 선주민 업주의 눈빛은 분명 차별의 눈빛이었다. 업주들뿐 아니라 관광특구 내에 살고 있는 적은 수의 선주민들 또한 차별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 너희가 있을 곳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듯한 쏘아붙이는 눈빛으로.
1960년대 냉전 구조 속에서 미국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위상을 선전하려고 이민법을 전면 개정해 쿼터제를 폐지하고 이민의 문을 넓히자,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지금처럼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은커녕 국제전화로 목소리 듣는 것도 쉽지 않았던 그 시절, 어쩌다 한 번씩 편지를 통해 전해지는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 뒤편에 얼마나 많은 설움과 차별의 시간이 있었는지 이제는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물 설고 말 선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히 쉽지 않지, 라고만 넘길 수 없었던 지난한 차별의 시간?. 이제야 경제 분야는 물론 정치 분야에서도 한인 출신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인으로 겪어야 하는 무수한 장벽이 있음을 캐시 박 홍은 분명히 전하고 있다.
타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동포’에게는 한없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면서 한 동네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주민에게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단일민족 ‘신화’와 우생학적 ‘편견’과 서구적 ‘세계관’에 매몰돼 피부색만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 출신 이주민을 비하하고 폄훼해 그들로 하여금 ‘minor feelings’를 느끼게 하는 적지 않은 이들은, 과연 캐시 박 홍이 전하는 ‘minor feelings’에는 뭐라고 답할까.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