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벨기에 사목 방문을 위해 브뤼셀을 찾았던 9월 28일. 교황은 오전에 진행된 사제·수도자와의 만남 후 예고도 없이 브뤼센 라켄 성모 성당 아래 지하묘지를 방문했다. 벨기에 제5대 국왕인 보두앵(재위 1951~1993) 국왕의 묘지를 찾기 위해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유명한 보두앵은 재위 중 신앙에 따라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왕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0년 벨기에 연방 의회에서 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키자 법안 공포를 막기 위해 서명을 거부한 인물이다. 이에 당시 연방정부는 국왕의 권한을 36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중지시켜 간신히 법안을 공포하는 ‘기지’를 사용하기도 했다.
바티칸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교황은 28일 묘지를 방문한 자리에 함께한 필리프 벨기에 국왕 내외와 참석자들에게 “보두앵 전 국왕은 낙태를 합법화한 살인적인 법률에 서명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국왕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선택했다”며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보두앵의 용기를 치켜세웠다. 교황은 이어 생명의 가치가 추락하는 현실에 맞서 벨기에 교회가 추진 중인 보두앵의 시복 절차가 진전되길 바라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교황은 보두앵을 예로 들며 전 세계 정치인들에게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용기를 당부하기도 했다. 교황은 이튿날 로마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 “보두앵 국왕은 ‘죽음의 법’에 직면했을 때 서명하지 않고 사임했는데 이것은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보두앵 왕이 보여준 용기는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을 지킨 ‘진짜’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