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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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정치적 노숙자’ 신세인 미국 가톨릭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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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해서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대통령 선거 경쟁은 ‘여태 그랬듯 두 악 중 덜 나쁜 쪽을 고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가톨릭신자이든 신자가 아니든,


많은 미국인들은 결함이 있는 두 후보 중에 선택해야 한다. 교황에게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그랬다. 만족스럽지 못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각 당의 열성 지지자들은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상황 판단은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싱가포르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 교황의 이 언급은 특별히 미국 가톨릭신자들이 진실을 포착할 수 있게 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가톨릭 사회교리를 충실히 따르는 미국인은 두 거대 정당에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주교회의의 로비스트였고 현재 조지타운에서 ‘가톨릭 사회사상과 공공생활회’를 이끄는 존 카(John Carr)는 이 점을 인상적인 말로 정리했다. 카는 가톨릭 사회교리를 미국의 양당정치 체제에 적용시키려는 미국인은 ‘정치적 노숙인’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날 교황들과 미국의 대통령 사이의 상호 교감을 살펴보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1963년 성 바오로 6세 교황 선출 얼마 뒤 린든 존슨이 미국의 대통령이 됐을 때, 전문가들은 진보적 성향의 교황이 인권 운동과 가난과의 전쟁 부분에서 이 민주당 지도자와 공감대를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카리스마 있던 전임자(성 요한 23세와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이은 두 지도자는 진보적 개혁에 뜻을 같이한 것으로 보였다. 1967년 12월 두 사람이 만날 때까지는 말이다. 당시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베트남 전쟁에 확연한 견해 차이를 보였던 책상을 내리치며 존슨 대통령에게 고함을 질렀다.


2001년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보수 성향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흡족해했다. 부시 대통령은 생명을 옹호했고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정책을 지지했으며 개신교 집안 출신이었지만 가톨릭교회를 존중했다. 하지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강력한 반대에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밀어붙여 교황청과 미국과의 관계는 크게 틀어졌다.


이런 관계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조 바이든 현 대통령까지도 이어졌다. 전통있는 가톨릭 가문 출신인 바이든 대통령은 항상 프란치스코 교황을 존경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교황과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가자 전쟁에서부터 낙태와 젠더 이슈에 이르기까지 분명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런 불협화음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과 1995년 각각 카이로와 베이징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서 낙태 이슈와 관련해 충돌했지만, 2000년 대희년에는 개발도상국의 국채 탕감 문제에 힘을 모았다.


대부분의 문제에 관해 대립각을 세웠던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교황청에서 만나 교황의 회칙 「진리 안의 사랑」에 관해 대화했다. 이 회칙에는 가난한 이웃을 위한 부의 재분배,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등에 대한 교황의 생각이 담겨있는데, 두 사람은 이에 대해 같은 견해를 갖고 있었다.


요점은 누가 백악관을 차지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화당이 차지하든 민주당이 차지하든 교회와 정부가 한마음이 되는 분야가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아주 간단하다. 각 당은 어느 부분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치고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조금 심하게 단순화시키자면, 공화당은 생명과 종교 자유, 종교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 문제에 교회와 한마음이며, 민주당은 빈곤 퇴치와 사형제도, 환경,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 문제에 교회와 그 궤를 같이한다. 다시 말해, 미국 가톨릭신자들은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준비할 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피오 라기 추기경을 미국으로 보내 전쟁을 막으려 했다. 라기 추기경은 10년 넘게 미국 교황대사로 근무했고 부시 일가와도 가까이 지냈다. 하지만 라기 추기경은 임무에 실패했고, 미국은 전쟁을 벌였다.


라기 추기경은 로마로 돌아와 몇몇 기자들을 모아놓고 브리핑했다. 당시 라기 추기경이 “문제는 미국에는 마니교도로 가득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니교와 같은 미국 정계의 이원론적 본질뿐만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견해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내 인터뷰에서 한 말은 가톨릭교회의 경험과 일맥상통한다. 교황의 언급이 트럼프와 해리스의 경쟁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적어도 교황은 잘못이 없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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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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