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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꿈 CUM] 복음의 길 _ 제주 이시돌 피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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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의 집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 마시지 않겠다.’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마태 26,26-30)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나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그와 하나로 묶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가 말한 여러 우화들 중에, 왕이나 영주로부터 초대를 받았지만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여러 변명을 댔지만, 실제 이유는 아마도 그가 그 왕과 한편으로 얽히면 다른 왕들과는 소원한 관계가 될까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어떤 편을 들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가 제자들과 나눈 이 식사는 매우 특별했습니다. 유대민족이 종살이에서 해방됨을 기념하는 식사이고, 이는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이 식사는 자신들을 해방으로 이끄신 하느님의 위대함을 새로이 되새기는 자리였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기념일인 셈이지만, 예수는 잠시 후면 자신이 체포되고, 고문 받고, 죽임 당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는 당연히 두려웠겠지만, 자신의 민족을 해방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여전히 굳게 신뢰했습니다.

또한 예수는 제자들 모두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갈 것임을 알았지만, 여전히 그들과 이 매우 특별한 밤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사랑(결국 우리들에 대한 사랑)은 조건적이지 않았으니까요.

원래 이 축제의 식사에는 특별한 음식이 마련됩니다. 노예 생활의 가혹함을 나타내는 쓴 허브, 봄과 생명의 순환을 뜻하는 달걀, 사람들을 대신해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을 드러내는 어린 양 같은 상징적 음식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오직 두 가지 특별한 것이 언급됩니다. 빵과 포도주가 그것이지요. 그 당시에 주식이었던 빵은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필요한 기본적 음식이었습니다. 이는 유대민족이 사막에서 굶주림으로 곤경에 처해있을 때 하느님이 주신 만나를 연상시킵니다. 물 또한 기본적인 필수품이었지만, 예수는 물이 아니라 포도주를 나눠줍니다. 포도주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축제 같은 때에 취하게도 하는 그런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를 생각해볼 수 있지요. 최후의 만찬 예식에서 예수는 빵과 포도주를 사용함으로써 기본적인 것만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 차고 넘치는 관대함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는 제자들에 대한 그의 사랑의 징표로 빵을 나누고 포도주를 나눠주는 단순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을 위해 부서지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 또한 표현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그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으로써 이 예식을 실제로  실행합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는 예수의 요청은 이러한 전례를 반복하라기보다도, 목숨 내놓음을 제자들이 잊지 말고 본받으라는 초대입니다. 예수는 우리들에게도 그 대가가 무엇이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나누라고 요청하십니다. 그것이 매번 행해지는 전례에서 우리가 예수를 기억하는 방법이라고요.

예식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졸업식, 결혼식, 신년식, 군사훈련소 수료 등의 예식이 예가 될 수 있겠지요. 이러한 예식들은 어떤 특정의 시점을 표하기보다는 새로운 삶으로 뛰어오르는 출발대로서 기능합니다. 이것들은 어떤 새로운 시점을 표시한 후 그 예식이 끝나는 시점에 같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식에서 표현된 본질적 가치는 우리들 일상 속에서 구현되어야 합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나면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사회 속으로 들어가 듯이요.

우리의 영적 삶은 단지 영성체를 모시는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성체성사를 마치고 나서 이어지는 미사의 마지막 부분이 바로 우리가 세상 속으로 파견되기 위한 기도입니다. 나눔으로써 예수는 성체 안에서 우리에게 현존합니다. 예수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나눔을 할 때마다 역시 우리에게 현존합니다.
 

글 _ 이어돈 신부 (Michael Riordan,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제주교구 금악본당 주임, 성 이시돌 피정의 집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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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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