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11월 5일)이 가까워 오면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중 누가 가톨릭 표심을 더 많이 얻을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에서 가톨릭은 가장 큰 단일 교회인 데다 이번에 초박빙 경합 주가 많아 가톨릭 표심도 백악관의 새 주인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갤럽 조사와 교황청 연감에 따르면 미국 가톨릭 신자는 전체 인구의 22다.
해리스, 유명 가톨릭 모금행사 불참
현재까지는 해리스 후보가 불리해 보인다. 침례교 신자인 그는 가톨릭에 친화적 태도를 보인 적이 거의 없다. 지난 9월 17일 뉴욕대교구가 주최한 연례 자선기금 모금행사 ‘알 스미스 디너’(Al Smith Dinner)에도 불참해 구설에 올랐다. “경합 주 유세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불참 사유를 미리 주최 측에 알리기는 했다.
이 만찬은 주요 정당 정치인들, 특히 대선이 있는 해에는 유력 후보들이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전통이 있다. 뉴욕대교구장 티모시 돌란 추기경은 “불참 동기는 알 수 없지만, 정치적으로 좋은 결정이 아닌 것 같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트럼프 캠프가 이 틈을 파고들지 않을 리 없다. 트럼프는 9월 23일 소셜미디어에 “해리스는 우리 가톨릭 친구들에게 확실히 친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리스에게 투표하는 가톨릭 신자는 정신 검사를 받아봐야(head examined) 한다”고 독설을 날렸다. 뉴욕 포스트도 “수년간 공개적으로 가톨릭에 적대감을 보인 해리스가 (만찬 불참으로) 신자들의 분노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해리스는 2018년 상원(법사위원회) 의원 시절 법관 인사청문회에서 한 후보가 활동하는 가톨릭 봉사단체 콜럼버스기사단이 여성을 차별한다며 자질을 문제 삼아 논란이 일었다. 무엇보다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해 교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트럼프 지지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미국 최대 가톨릭방송 EWTN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트럼프는 해리스(50.1)에 8 포인트 가까이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퓨리서치센터의 9월 조사에서 가톨릭 유권자의 52는 트럼프, 47는 해리스를 지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가톨릭 표심이 어느 한쪽에 쏠렸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선거 구호에 반가톨릭적 요소 많아
하지만 ‘가톨릭의 눈’으로 보면 트럼프의 정치 이력과 선거 구호에 반가톨릭적 내용이 훨씬 더 많다. 대선 불복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선동, 포르노 배우와의 성추문 폭로 입막음용 돈거래, 불법 이주민 부모와 아동 강제 분리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첫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는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 등 주민들의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고 발언해 진행자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 가능성에 대해 “그들(이스라엘)은 공격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복음 정신과 교회 가르침에 비춰 용인하기 어려운 발언이 대부분이다. 미국 가톨릭 매체 NCR은 7일자 사설에서 “우리는 트럼프의 규범 파괴에 너무 무감각해져서 예전에는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을 행동이 이제는 대통령직 수준에서 용인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의 친가톨릭적 발언은 특정 종교의 불만을 자극해 해리스를 고립시키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또 강경한 이주민 정책은 과거 대선에서 표를 모아준 백인 복음주의자들, 이스라엘 지지는 유다계 미국인 표심에 호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9월 13일 아시아-오세아니아 4개국 순방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기내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이민자를 쫓아내는 사람이든(트럼프), 아기를 죽이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이든(해리스) 둘 다 생명에 반한다”며 “덜 악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일 텍사스주 오스틴교구의 조 바스케스 주교는 “후보와 공약을 연구하고 교회 가르침의 도움을 받아 후보들이 우리의 신앙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판단해야 한다”며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을 상기시켰다.
김원철 선임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