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비료와 농약 없이 유기농으로 제가 정성껏 키운 꿀고구마입니다. 대파와 사과도 전주교구 농민들이 정성껏 농사지은 것들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10월 20일 수원교구 상현동본당(주임 서북원 베드로 신부)에서 열린 장터에는 생명농산물뿐 아니라 생명공동체를 만드는 상생의 에너지가 거래되고 있었다. 가톨릭농민회 농민이 재배한 우리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상현달장’을 8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상현동본당. 한 달에 한 번,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다는 소식에 9시 미사가 끝난 뒤 몰려든 신자들은 각자 가져온 장바구니에 생명농산물을 가득 담아갔다. 이날 장터에 나온 교구는 전주교구와 광주대교구. 갓 수확한 통호두와 대파, 고구마, 사과, 배 등 제철 농산물은 한눈에 봐도 신선함이 드러났다. 김장철을 앞두고 내놓은 젓갈과 청국장도 불티났다. 직접 재배한 농민이 설명하고 판매하니 농산물의 품질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상현동성당 곳곳에서는 생명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매달 1회 생태환경 미사를 봉헌하면서 그달의 환경실천 다섯 가지를 공유한다. 안 쓰는 전기 코드 빼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엘리베이터 대신 걸어 다니기 등 부담스럽지 않은 목표는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우유팩과 폐휴대전화, 배터리를 성당에 제출하면 생태환경분과에서 지자체를 통해 휴지나 종량제봉투를 받아 신자들에게 선물한다. 성당에 오기만 해도 신자들은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상현동본당이 생명공동체로 나아가는 데는 주임 서북원 신부의 의지가 컸다.
서 신부는 “본당 공동체 안에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사목을 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이 생명운동이었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신자들이 함께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상생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상현달장도 생명공동체를 만드는 일환이다. 생명농산물을 구매하는 과정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농민들을 만나 직접 농산물을 구매하면서 신자들은 우리집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가 어떤 땅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생각하게 된다. 정갈한 매장에서 곱게 포장된 농산물을 의식하지 않고 장바구니에 담아오는 일반적인 구매방식과 차이가 있다. 전환된 인식은 결국 우리집 밥상이 건강해지기 위해 우리 땅이 건강해져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날 상현달장을 이용한 김미희(에텔지바) 씨는 “원래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서 유기농 제품들을 이용하는데 성당에서 신선한 우리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어서 좋다”며 “게다가 직접 농산물을 재배한 농민들이 판매하니 믿을 수 있고, 우리가 농민들과 함께 살고 있고 함께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도 됐다”고 말했다.
서 신부는 “직거래를 통해 서로 얼굴을 보면서 농민들의 상황, 도시 소비자들의 상황을 공유하게 된다면 분명히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상현달장을 시작했다”며 “장터를 열 만한 공간이나 신자들의 인식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 있지만 주임 신부의 의지가 있다면 작게라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