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아침, 미사에 참여하려고 성당에 도착했다. 미사 전 한국어 「매일미사」를 살펴보니, 그날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전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었다. 그런데 새삼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한국 교회의 순교자 축일이 이곳 미국 테네시 낙스빌에서도 같은 ‘Memorial of Saints Andrew Kim Tae-gon, Priest, and Paul Chong Ha-sang, and Companions, Martyrs’로 기념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의 교회를 세우셨다. 한국의 교회가 곧 미국의 교회이고, 미국의 교회가 곧 한국의 교회인 것이다. 그렇기에 한 신앙을 공유하는 하느님의 거룩하고 보편된 가톨릭교회이며 당연한 일이었지만, 새삼 기분이 묘했다.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한국의 순교자 축일을 미국인들과 함께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죠 신부님은 이날 미사에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특별한 역사와 순교자들에 대해 강론하셨다. 여기는 한국 성당도 아니고, 영어로 진행되는 미국 미사였으며, 미사에 온 사람들 중 한국인은 나와 아내 수산나뿐이었다. 그러니 분명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강론은 아니었다.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은 한국뿐 아니라 가톨릭교회 전체의 성인이시며, 그분들의 희생이 가톨릭교회 전체에 귀감이 되기 때문에 이런 강론을 하신 것일 것이다.
강론의 요지는 이러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많은 나라와 달리, 학문을 통해 소개된 가톨릭 신앙은 한국의 학자들 사이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들은 가톨릭 교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 유일하게 선교사 없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 첫 사제가 들어왔을 때 이미 7000명의 신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체와 미사를 간절히 원하면서 말입니다.” 죠 신부님은 이어 수많은 순교자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한국 교회의 역사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곳 낙스빌에도 한인 가톨릭 신자들이 있으며, 그들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도 하셨다. 이는 우리 공동체 이야기였다.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우리의 위대한 신앙 선조들이 이루어놓은 일인데, 어쩐지 내 어깨가 으쓱해지는 건 왜일까. 미국에 산 지 10년이 넘어가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곳에서 더 이상 목숨을 잃을 걱정 없이 편안하게 미사를 드리며, 사제가 없어 성체를 모시지 못해 목말라하지도 않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조상인 순교자들이 하신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니, 어쩐지 머쓱하고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절, 조선에 살았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자신 있게 주님께 내 목숨을 온전히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2024년 오늘, 여기서 내가 순교의 은총을 받은 것 같지는 않지만, 대신 하느님께 나를 온전히 바칠 수 있길 기도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내가 매 순간 하느님을 생각하며 작은 결정부터 큰 결정까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음의 순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저와 낙스빌 한인 공동체의 마음의 순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