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종합] 페루 도미니코회 출신으로 ‘해방신학의 아버지’로 칭송받으며 교회가 사회정의에 나서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할 것을 요청했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가 10월 22일 선종했다. 향년 96세.
도미니코수도회 페루관구는 1971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해방신학: 역사와 정치와 구원」을 쓴 구티레에스 신부가 선종했다고 발표하고 “구티에레스 신부가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장례미사는 10월 24일 리마의 산토도밍고대성당에서 봉헌됐다.
해방신학은 1960~70년대에 남아메리카에서 생겨났다. 해방신학은 사회의 부조리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는 영감과 원리를 복음에서 찾고자 했다. 해방신학의 출발점은 남아메리카의 가난이라는 구체적인 상황과 죄와 불의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싸움 속에 성경을 자신들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것이었다. 구티에레스 신부의 「해방신학: 역사와 정치와 구원」은 이 해방신학 운동의 토대가 됐다.
1980년대, 훗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교황청 신앙교리성(현 신앙교리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해방신학에 관한 주요 문헌 두 권을 발간했다. 그는 가난한 이와 정의에 대한 해방신학의 관심을 찬양하면서도 해방신학이 지나치게 마르크스 사회 분석에 의존했다고 비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스페인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해방신학은 남아메리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면서 “교황청은 해방신학의 마르크스 사회 분석 부분을 비난했지만,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고 받아들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28년 페루 리마에서 태어난 구티에레스 신부는 195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1999년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했다. 구티에레스 신부는 벨기에 루벤가톨릭대와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귀국 후 페루를 비롯한 남아메리카의 현실을 경험한 후 그리스도 신앙의 중심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실천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남아메리카 주교단은 대륙 사목 활동에 해방신학을 반영했고, 그의 「해방신학: 역사와 정치와 구원」은 교과서처럼 읽혔다.
교황청 신앙교리부 전 장관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은 “구티에레스 신부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신학자”라면서 “신앙을 실천한 모범을 보인 그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