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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빨리 없애기!

[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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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에서 하늘이 자연을 순환시키는 활동을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단위로 설명을 합니다.

이것을 일 년 단위로 말하면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로 말할 수 있고, 한 생명의 성장 과정으로 말하면 생겨나고, 자라고, 이루어지고, 거두어짐의 과정입니다. 온전한 생명 활동은 이렇듯 기다려야 하는 다양한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는 멈춤도 반드시 포함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4분의 1인 겨울은 활동을 멈추는 비움의 시간이며, 하루 24시간의 4분의 1인 6시간은 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생명은 기다림이 필요하고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은 활동과 멈춤이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인간이 닦달하여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연 생명을 닦달하여 기후위기가 왔다면 인류 사회가 닦달하여 인간 생명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원, 형, 이, 정의 순환을 닦달하는 소리가 바로 ‘빨리빨리’입니다.

성질이 급한 한 사내가 국숫집에 들어서자마자 왜 아직 국수를 안 가져오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사내가 엉덩이를 들이대고 자리에 앉자마자 일하는 사람이 서둘러 국수를 놓고 말합니다. “빨리 드세요. 그릇을 씻어야 해요.” 빨리 먹으라는 말에 화가 난 사내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하길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야.” 그러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가 보따리를 싸며 말하길 “당신이 죽었다니 재혼을 해야겠습니다.”《雅俗同觀》(아속동관)

‘빨리빨리’는 한국 사회에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힌 일상이 되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밀어붙이는 힘은 결국 나를 밀어붙이는 힘으로 돌아오게 되죠. 사회 전체가 빨리빨리 속에서 멍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만들어 가는 시간과 멈추어 기다리는 시간이 있을 때 온전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닦달하면 결국 자기도 시달리게 됩니다. 기술 산업사회가 더 많은 생산품을 만들어 내고, 소비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동력을 내놓으라 닦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생명이 아니라 소비 대상, 노동력으로만 취급되게 되었고, 멈춤은 익어가는 과정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공짜’, ‘게으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빨리빨리 원하는 결과를 내놓으라 닦달만 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한 젊은 교사의 비보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선생님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도구가 되었고, 내가 세금을 내어 돈으로 산 소비 대상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닦달한 이 역시 그 뒤에서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노동력, 소비상품으로 진열돼 있을 것입니다. 닦달하기 전에 자신의 뒤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빨리빨리 최고를 만들어 내라는 요구가 빨리빨리 최고 먼저 망하는 나라가 되는 길임을 우리 사회는 깊은 반성과 함께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시편에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 정녕 당신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습니다.”(84,11)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무리 천막 안이라도 악인의 집에 있느니 천막 밖 문간이라도 하느님의 집이 낫다고 합니다. 천막 안에 있다는 것은 주인이라는 말과 같고, 집 문간에 있다는 것은 문지기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인의 집에서 주인이 되느니 문지기라도 하느님의 집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모두가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 그 집이 주인이 살 수 있는 집인지는 우리가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천 날, 만 날, 영원히 지금 삶이 반복된다면 그 집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라면 악인의 집 천 날, 만 날, 영원한 날보다 더 행복한 하루를 다시 만들어 가도록 합시다. ‘빨리빨리’가 싫지만 ‘빨리빨리’를 빨리 없애기를 원합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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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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