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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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보(聖心報)」와 「고려치명사략(高麗致命事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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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보」는 1887년부터 1949년 중국 공산화 직전까지 상해 서가회 천주당에서 매달 펴냈던 유서 깊은 신앙 잡지다. 발행인을 맡았던 심칙관(沈則寬, 1838-1913) 신부는 이 잡지에 조선 교회사를 순교자들의 자취 소개 중심으로 연재하였다.


1895년 6월, 제 97호에 실린 「고려치명」이란 첫 글에서 심 신부가 강완숙, 윤점혜, 문영인 세 여성 순교자를 소개한 것은 뜻밖이다. 내용은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를 참고하였다. 이 글을 두고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심 신부가 조선 교회사의 큰 흐름을 살피는 내용으로 연재를 확장하면서 불어로 된 달레의 두꺼운 책 속에 숨어 있던 조선 교회의 여러 상황들이 현장 중계하듯이 이어졌다.


그들은 어떻게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 모진 박해의 시련 앞에서 어떻게 한 치의 의심 없이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나? 중국의 천주교 신자들은 글에 소개된 조선 교우들의 순교 장면과 신앙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분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총 24회로 이어지는 대장정이 시작되어, 1898년에야 마무리 되었다.


이 글 묶음은 1900년에 「고려치명사략」이란 제목 아래 한문 222쪽의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이것은 중국인 신부가 기사본말체의 역사 서술 방식을 채택해 재정리한 최초의 한문본 한국천주교회사였다. 원본인 달레의 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간명하고도 신선한 편집이었다. 지금부터 124년 전의 일이다.


잡지 연재 당시의 인명 표기는 엉망진창이었다. 강완숙은 성이 강(康)씨로 바뀌고, 윤점혜는 웅(熊)씨로 둔갑했다. 문영인은 맹(孟)씨로 써놓았다. 이승훈이 손봉의(孫鳳儀)가 되고, 이벽은 필의(畢義)로 표기하였다. 당초 달레는 이름을 알파벳 표기로만 적었는데, 중국과 조선의 한자음이 완전히 다른데다 심 신부가 조선어 한자 발음을 몰라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알파벳 표기에 가까운 중국음의 한자를 찾다 보니 벌어진 소동이었다.


막상 잡지 원고를 묶어 펴낸 「고려치명사략」에는 대부분의 이름이 바로 잡혔다. 최근 소진형 씨의 연구에 따르면 심칙관 원고의 인명 오류를 바로 잡아준 것은 뮈텔(1852-1933) 주교였다. 뮈텔 주교가 1898년 건강상 이유로 상해에 건너갔을 때 당시 『고려치명사략』의 출간을 준비 중이던 상해 서가회에서 뮈텔 주교께 인명과 장소 표기의 수정 검토를 요청했던 것이다.


뮈텔 주교는 이에 자신이 새로 입수한 「황사영백서」 등의 자료에 근거하여 인명 표기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었고 다른 자료까지 제공하였다. 그 결과 출판된 「고려치명사략」에는 달레의 책에 없는 정보까지 일부 첨가될 수 있었다. 더욱이 이 책이 1900년 당시 의화단의 난으로 중국 각지의 천주교회가 초토화되고, 신자들이 무자비하게 살육되는 와중에 조선 교우들의 순교 정신을 본받아 이 시련을 이겨 내자는 취지에서 간행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뜻깊다.


무려 124년 전에 간행된 최초의 한문본 한국천주교회사 「고려치명사략」은 소진형 씨의 연구 외에 이제껏 제대로 연구된 적이 없고, 자료 가치가 없다고 보아 번역도 되지 않았다. 놀랍고 부끄럽다.



글 _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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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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