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어디서 초상이 났다고 하면 누군지 몰라도 같이 가서 연도(위령기도)를 했죠.”
내포의 사도 하느님의 종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이 신앙의 뿌리를 내린 내포지역. 그중 합덕에는 현재도 천주교 신자가 90에 이른다. 합덕리의 신앙적 토대는 상장례의례 전통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연도, 즉 위령기도야말로 한국 가톨릭의 기도와 헌신, 공동체성을 보여주는 표징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청도 위령기도가 지역의 기층문화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 ‘미래 무형문화유산 발굴·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합덕 지역의 천주교 상장 의례 연도’를 연구하고 있다.
1890년 장 퀴를리에 신부(Jean Curlier)가 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설립한 양촌성당이 합덕리로 이전되면서 1899년 현재의 자리에 합덕성당이 세워졌다. 농지를 매입해 농민들에게 소작을 주며 선교를 펼친 결과, 합덕리는 신자들이 점점 늘어났고 가톨릭 신앙의 요람이 됐다.
당시 합덕리 마을 전체는 커다란 성당과 같았다고 주민들은 회상했다. 주민 한상문(마르코·83) 씨는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보다 세례명을 먼저 지었다”며 “학교를 안 가면 몰라도 주일미사에 빠지면 집안 전체가 난리가 났다”고 당시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상장례에서도 가톨릭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2013년 마을에 장례식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합덕리에서는 고인을 성당의 별관에 모셔두고 연령회 주도로 상장례 절차를 진행했다. 상장례 과정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돕는 계조직도 합덕 지역에서는 활성화돼 있었다. 주민 김태부(베드로) 씨는 “초상나면 손님도 받고 밥도 해 먹여야 하는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그조차 어려우니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돕고자 모두 상포계를 들어 초상집에 쌀 한 말을 전달했다”며 “상여를 운반하고 무덤터 다지는 등 장례 전반의 일을 돕는 상포계도 우리 마을에서는 모두가 함께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예전에는 제사를 드릴 때에 마을 주민들이 함께 위령기도를 바쳐 주기도 했다”며 “누구 집에 제사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제사 시간에 맞춰 인근에 사는 신자들이 와서 함께 했다”고 전했다.
현재도 몇몇 신자들은 가정 내에서 예전의 연도 가락으로 위령기도를 하고 있다는 게 합덕본당 신자들의 증언이다. 대부분 지역에서 사라진 위령기도의 전통이 합덕 지역에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천주교 신자의 비중이 높은 당진·합덕 지역에서 여전히 위령기도와 관련한 의례와 연행이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내포교회사연구소 소장 김성태(요셉) 신부는 “옛날 위령기도를 발굴하는 것은 신앙의 복구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는 작업이기에 다른 지역에서도 옛 위령기도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