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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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9) 성전 건립 유감(有感)

-뚝심과 효심으로 이룬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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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 - 교육문화회관>

 옛 성전을 허물기 위해서는 교육관이 먼저 지어져야 했다. 이때만 해도 경험이 없어서 본당 회장단에게 일임했다. 전 회장님이 솔선수범해서 설계와 시공을 정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조금만 건축을 알았더라면 교육관도 더 알차게 실용적으로 지었을 텐데 지나고 보니 아쉬웠다. 시간도 별로 없었고, 다만 옛 건물이 워낙 옹색하고 초라했기에 여유 있는 공간으로 지었다. 특별히 사무실과 주방은 워낙 비좁고 낙후된 시설이었기에 널찍하게 지었고, 무엇보다도 주방은 가히 대한민국 성당 중 가장 큰 규모와 첨단 설비를 다 갖추었다. 거의 한이 맺힌 정도였기에 살풀이하듯 크게 지었다. 지나고 보니 그 바람에 대회의실이 좀 작게 나와서 아쉬웠다. 차라리 2층으로 설계를 했으면 예산은 더 들었겠지만, 더욱 넓고 알찬 공간을 연출했을 텐데 많이 아쉬웠다. 그러다 보니 미사를 봉헌하고 전 신자가 식사를 함께할 강당 천정이 너무 높은 데다가 흡음을 면밀히 하지 못해 음향이 울리는 폐단이 있었다. 몇 번의 보완을 거치다가 차후에 성당 공사가 마무리되어가면서 새로이 제대로 된 음향 설비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성전 건립을 추진하기 직전까지 수도자가 두 명씩이나 파견 나와 있었는데 본당 재정 형편상 운영이 어려워 수도회 장상과 협의하여 철수하기로 하고 주교님께도 보고드려 완결지었다. 그때 사정을 모르는 본당 신자들이 ‘신부님이 수녀님들 쫓아낸다’고 반발이 심했고 연판장까지 써서 돌리며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 바람에 교우들 중에서 자매들이 제의방 일과 미사 준비를 맡게 되었는데... 몰라서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평신도들이 더 열심히 잘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신자들로 적잖이 힘들었지만 차츰 이해하게 되면서 수그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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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성전 기공식(본당자체)
 

새로 마련된 교육관도 1층이라서 자칫 거북이 등 모양처럼 보기 흉하게 될까 우려하여 강당 부분은 천정을 높게 하고 삼분의 일 부분만 2층으로 하여 회의실을 6개 넣었다. 지붕을 영구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비싸지만 동판으로 하고 내부 설비도 좋은 자재를 사용했다. 교육관의 이름을 우리 교우들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염두에 두고 주보 성인의 이름을 따 ‘노동자의 성 요셉 교육 문화회관’이라 이름을 짓고 글씨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썼다. 이름하여 나의 독특한 필체를 가리키는 ‘두꺼비체’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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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성당(교육관) 미사
 

처음 부임하고 밤에 보니 마당이 너무 어두워 처음에 한 일이 성당 마당 일원에 가로등을 많이 세웠다. 안 그래도 눈이 침침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성당, 무조건 밝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밝게 했다. 강당도, 회의실도,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그렇게 새 교육관을‘광야 성당’이라 부르며 새 교육관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며 사제관과 성전을 건축하기에 이르렀다. 모두들 새로운 환경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밝고 큰 회의실에서 레지오 주회를 하고 밖에서 눈비 맞지 않고 천막 안치고 따뜻하고 시원하게 식사하고 잔치를 하게 되니 모두들 함박 웃음을 지으며 좋아라 했다. 그리고 성당을 마음의 고향, 영적인 고향이라 생각했기에, 더욱이 마당도 꽤 있었기에 꽃나무를 많이 심었다.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에 나오듯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 ‘아빠하고 나하고 놀던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 시골 고향의 정겨웠던 모습을 우리 성당에 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살구나무, 매화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다. 살구나무는 벚나무와는 달리 화사하지는 않아도 객지 나간 자식들을 기다리는 어머니같이 수줍은 듯 한켠에 서서 목 빠지게 자식들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 모습이었기에 성당이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길 바랐다. 꽃도 결코 화려하지 않고 겸손하고 심심하게 피었다. 매화나무는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기도 하거니와 그 향기가 상큼하고 좋은 열매를 맺기에 이 나무도 많이 심었다. 거기다가 목련, 홍매화, 배롱나무, 영산홍, 또 여름에 큰 그늘을 드리우도록 느티나무, 또 꾀꼬리가 와서 울도록 참나무 … 그리고 성모님을 상징하는 로사리아, 장미꽃을 거의 도배하듯 심었다. 가을이면 빨간 단풍을 볼 수 있도록 단풍나무, 개복숭아, 명자나무, 진달래, 무엇보다도 성당 묘지에서 굴취한 높고 휘늘어진 소나무... 확실히 소나무로 인해 성당 전경이 전혀 색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역시 나무의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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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성당(교육관) 미사
 

좁고 어두운 굴속 같은 사제관이 너무 답답했기에 크고 넓고 높은 사제관을 갈망했는데 설계 미스로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그나마 2층이어서 전망은 좋았다. 사제관부터는 거의 모든 작업 공정을 독수리의 눈으로 일일이 꼼꼼히 확인하며 모양, 색깔, 자재의 강도 등 가장 좋은 재료를 썼다. 오래도록 영원히(...?) 가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공정 회의 때나 공사 중에도 내 눈에 들지 않거나 부실해 보이거나 모양이나 색깔이 이상하면 가차 없이 지적하고 다시 하도록 독려하고 호통도 쳤다. 어떻게 짓는 사제관인데(..??) 대부분의 건물을 보면 겉모습은 빨간 벽돌이지만 색깔도 이상하고 질감도 맘에 들지 않았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본 결과 가장 눈에 들었던 벽돌이 있었는데 그것이 가장 자존심 높은 이화벽돌이었다. 빨간색과 함께 드문드문 탄 어두운 색깔의 벽돌이 어우러져 묘한 맛을 풍겼다. 그리고 기둥 쪽은 빨간 벽돌을 여러 번 구워 검게 탄 전벽돌을 사용했다. 교우들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너무 좋은 것만 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 눈에 들은 것들은 좀 비싸기는 하지만 강도도 좋고 여러 가지 면에서 기능성도 좋고 내구성도 색감도 좋았다. 무조건 비싼 것을 쓴 게 아니라 이 자리에 가장 적합한 자재, 좋은 것을 썼다. 시공업자도 일하는 노동자들도‘어지간하다~’며 투덜댔지만, 그렇게 안 하고 설렁설렁 넘어갔다가 나중에 안 맞거나 잘못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무엇보다도 기금 마련도 거의 내가 다 하는 것이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만만하게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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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성전 기공식(본당자체)
 

연립주택과 아파트를 전전하며 성당으로 출퇴근(성당에 다닌지...??)한 지 몇 년이었던가?... 마침내 사제관에 입주하던 날, 마치 처음으로 내 집이 생겨 이사 간 날 좋아라 날뛰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기뻤다. 아울러 어두운 골방에서 불편하게 사셨던 어머니 생각에 송구함과 불쌍한 마음에 눈시울이 또... 아마도 서울을 포함해 이렇게 좋은 자재로 지은 사제관도 없을 거라 확신한다. 한 달 넘게 집기와 살림살이를 배치하고 정돈한 후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성당 건축에 집중했다. 설계와 시공 모두가 다 중요하지만, 그때그때 면밀한 검토와 정확한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뒤늦게 새삼 절감했다. 아무리 잘 졌어도 아쉬움은 남기 마련인데... <계속>

-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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