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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 정육점

[월간 꿈 CUM] 수도원 일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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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무르익어 단풍이 절정이다. 산들이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는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수사님들은 시간이 나면 가을 산행을 간다. 알록달록 나뭇잎들이 어찌나 이쁜지 산행을 하면서 눈이 호강한다.

언젠가 수사님들이 단풍 구경삼아 김밥을 싸들고 등산을 갔다. 구름이 많아 등산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지만, 햇살이 가득한 날에 비해 단풍 색깔이 다소 어두웠다. 한참을 산행을 즐기다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수사님들은 가지고 온 김밥으로 요기를 하기 위해 적당한 자리를 물색했다. 마침 등산로 옆에 단풍나무가 몰려있는 제법 널찍하고 평편한 공간이 눈에 띄었다. 여럿이 둘러앉아 김밥을 먹기에 딱 좋은 자리여서 얼른 자리를 잡고 가져온 돗자리를 깔고 식사를 하였는데, 걷느라 흘린 땀이 식으면서 조금은 한기가 느껴졌다. 그때였다. 갑자기 구름이 물러가며 날씨가 활짝 개었다.

따뜻한 햇살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나오는데 우리가 앉은 자리가 순간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단풍잎을 통과한 햇살이 빚어낸 조명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분위기였다. 단풍나무가 몰려있는 군락지였기에 햇살을 받은 단풍나무들이 뿜어내는 색깔은 정말 아름다웠다. 순간 수사님들의 입에서 감탄사들이 터져 나왔다.

“너무 예쁘네.” “아름답다.” “이렇게 신비로운 색깔은 처음 본다.”

이때 한 수사님의 감탄사가 우리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우와~!! 완전…, 무슨 정육점에 들어온 것 같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우리는 그 수사님을 향해 핀잔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수사님, 정육점이라뇨? 이렇게 멋진 상황에 정육점이 웬 말입니까?”

그 수사님은 갑자기 멋쩍어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우리가 머문 자리가 시뻘겋게 물든 순간 정육점이 생각나서 해본 말이에요. 정육점 이름으로 ‘단풍나무 정육점’도 괜찮은 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맛있게 김밥을 먹는다. 다음엔 꼭 정육식당에 가서 수사님께 고기라도 좀 사줘야겠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1991년 성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 1999년 서울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선교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사제서품 후 유학, 2004년 뉴욕대학교 홍보전문가 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성 바오로 수도회 홍보팀 팀장, 성 바오로 수도회 관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그리스도교 신앙유산 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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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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